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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 22.06.27 ~ 22.07.02 )

목차

에베소서 6장

22.07.02

19절)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NOT A FAN!
17년도 당시에 오키나와 비전트립을 떠나기 전에 NOT A FAN!을 읽었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의 주제였다.
팬으로 미칠 것인가? 제자로서 미칠 것인가?
팬과 제자의 공통점은
대상/스승을 좋아함
대상/스승을 따름
대상/스승을 존경함
팬과 제자 모두 대상을 좋아하고, 따르고, 배우고, 존경한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팬은 좋아하는 데에서 그치고,
제자는 스승의 행적을 쫓아서 실천한다는 점이다.
팬은 예수님을 미친 듯이 좋아하기만 하고, 나라는 대상에 초점이 맞춘다.
제자는 스승인 예수님을 본 받고, 삶의 영역에서 실천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기위해 노력한다.
에베소는 우상숭배가 만연해 있는 지역이었다.
풍요의 신인 아데미의 우상 숭배가 꽃이 핀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복음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성령의 전신갑주와 말씀의 검을 들고 싸우라는 이야기한다.
물렁하게 있다가는 물렁이처럼 사라지는 혹독한 곳이기에 믿음을 지키는 군인처럼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어떨까? 그 당시 에베소와 다르지 않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곳이다.
에배소서 묵상을 통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냥 저냥 물렁이 처럼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지금 당장 입을 갑옷과 검이 없다면, 가내 수공업으로 한땀한땀 만들어 가자.
말씀으로 무장하고, 삶의 영역들에서 주님의 향기를 뿜어 내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질문
Q) 나만의 작고 소중한 우상은 무엇인가요? 주님이 버리라고 하면 버릴 수 있나요?

에베소서 5장

22.07.01

32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교회의 유닛(Unit), 가정
수학적인 용어로 Unit은 약속한 가장 작은 단위이다. 이러한 Unit이 있기에 더하거나, 곱하거나, 나눌 수 있다.
교회의 최소 단위는 가정이다. 가정이 기본이 되고, 기준이 된다. 진정한 공동체는 가정으로부터 출발된다.
우리가 가정을 위해서 힘써서 지키고, 이루어가야하는 이유이다.
가정에서 가장으로써 나는 발이 되고 싶다. 가정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같다면, 머리는 예수님을 세우고, 나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정을 움직이고,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발의 역할을 감당하고 싶다.
또한, 남편으로써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비법이다. 예수님과 같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전제가 된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한 찬양을 떠올리게 한다.
“주 발 앞에 무릎 꿇고”
아내의 말에 무릎 꿇고 순종하는 것이 사랑의 방법이다.
아내와 자녀를 잘 양육하고 보호 할 수 있는 남편과 아버지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생각
아내 사랑하기를 예수님과 같이 하라는 본문을 보면서, 결혼할 때 갖은 마음가짐(초심)이 생각났다.
주변의 결혼한 사람들을 보면, 아이를 낳고 현실적인 문제들로 부부싸움을 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들이 많다. 경제적인 문제, 부모와 자녀에 대한 걱정, 각자 원하는 방향이 다른 문제 등등이 타협이 안되는 문제들일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미디어에서 보이는 문제들은 심각한 것들이 많다.
세상이 더 악해지고, 이혼은 하나의 트렌트가 되어가고 있다. 그 핵심은 자기 자신을 그 무엇보다 소중하는 세상의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나는 앞서 말한 초심을 잘 지킬 수 있을까 걱정이 든다. 지금은 괜찮지만, 아이가 태어난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워 진다면?? 그럼에도 감사와 찬양으로 말씀을 붙들면서 우리 가정을 지킬 수 있는 앎을 깨달을 수 있어서 감사한 오늘이다.
오늘의 질문
가정을 위해서 기도할 일이 있나요?

에베소서 4장

22.06.30

29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죄의 통로, 은혜의 통로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시기에 꿈을 꾸게 되었다.
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무언가 목에 걸려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꿈에 당시 함께 사역을 하던 전도사님 사모님이 나오셨고, 빛나는 형상이었다.
함께 예배당을 가기 위해서 엘레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목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나는 연신 괜찮다고 하며, 입을 막았다. 그 분은 그저 온화한 미소만을 짖고 계셨다.
엘레베이터에서 내리고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흐르는 피를 닦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이 나의 목에 있는 무언가의 줄기를 쑥 하고 잡아당겼다. 그리고 큰 핏덩어리 같은 것이 쏟아지면서, 피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그리고 온화한 미소를 띄며 예배당으로 걸어가셨다.
피가 너무 많이 나와서 놀란 마음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이전에 입으로 지은 죄가 너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죄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그냥 재밌으니까 된거지 라고 생각하였다. 그 후로 항상 입으로 죄를 짖는 것을 경계한다.
이제는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데 힘쓴다. 죄를 짖던 통로가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은혜의 통로가 되었다. 할렐루야
이처럼 세상에는 죄와 은혜 속성 모두를 흘러 보낼 수 있는 통로가 존재한다. 그것을 죄의 통로로 사용할지, 은혜의 통로로 사용할지는 통로의 주인에게 달렸다.
성령님 안에서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생각
하루를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가장으로써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 믿고 새사람으로 거듭난 것처럼, 이제는 오래된 죄의 습관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은혜의 흰옷을 입을 때라고 피부로 느낀다.
기도하는 일에 부지런하고, 가정을 돌보는 일에 전심으로 하자.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은혜로 복음의 통로를 간절히 갈망하자.
오늘의 질문
Q)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오래되고 안 좋은 죄의 습관이 있나요?

에베소서 3장

22.06.29

13절)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환난에 대한 태도
1절에 바울은 옥에 갇힌 상황이었다. 그리스도 예수를 전하는 일 때문에 갇히게 되었다고 기록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고통과 환난 조차도 복음을 전하는 일로 전화위복 하였다.
환난을 성도에게 영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가능하다.
호주 선교사님의 간증 영상이 기억난다. 그 목사님은 호주에 선교를 가서 청소년들을 위해서 힘써 사역하셨다. 한번은 가출 소녀를 정성껏 돌봐주었다. 오히려, 성폭행범으로 몰리게 되어서 먼 타지에서 감옥에 투옥되셨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갱스터와 폭력이 넘치는 곳에 홀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환난을 복음의 길로 사용하셨다. 폭력과 죽음 밖에 없었던 갱스터들이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믿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고, 기적들이 일어났다.
말씀을 읽고, 간증을 들으며 성령의 역사를 믿는 믿음이 더욱 깊어진다.
전에는 단순히 나만의 행복, 부귀영화를 위해 기도했다. 고통을 없애고, 빨리 회복시켜달라고만 했다.
이제는 환난, 고통까지도 주님의 관점에서 어떻게 사용하실지 또 주님의 길은 무엇일지 기도해본다.
오직 나의 목적을 위한 기도가 아닌, 그리스도 예수님이 원하시는 목소리를 구해본다.
환난이 찾아오면, 외쳐보자. 고맙다! 환난!
오늘의 생각
지금 나에게 큰 환난을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감사함도 없이, 기도도 없이 그냥 흘러가는 시간들이 큰 환난으로 다가왔다. 맹인이 지팡이도 없이 외나무 다리를 겪는 꼴이 아니겠는가?
위기가 위기인 줄 모를 때가 가장 큰 위기라고 한다. 나의 신앙이 무너져가는 위기를 놓치고 있었다.
오직 잘 먹고, 잘 사는 일에만 몰두 하였다. 먹고 마시는 일에 너무 큰 두려움이 있었다.
하루하루를 주님과 가까이 하는 일에 소홀히 하지 말자.
실천
하루 태교 마치고, 소지니와 함께 기도하기.
오늘의 질문
지금 나에게 가장 큰 환난, 걱정, 염려 가 무엇인가요?
영상

에베소서 2장

22.06.28

22절)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많은 성공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런 성공 스토리를 많이 접하다 보면, 과정 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기가 쉽다.마치 하루 아침에 성공한 듯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성공 스토리 안에는 성장의 과정이 있었고, 눈물과 땀으로 이룬 성과들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경 인물과 다른 사람들의 신앙 간증을 듣다보면, 과정보다는 결과에 초점이 맞춰지기 쉽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자책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아 났는데, 나의 삶은 이전의 삶과 똑같이 느껴집니다.
똑같은 죄가 반복되고, 똑같은 실족에 미끄러 집니다.
하지만, 성숙한 신앙도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눈물과 기도로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함께 지어가는 교회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성소를 짖기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해야 합니다.
나의 노력으로는 성숙한 신앙을 만들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가능합니다. 오늘 하루 주님을 의지하면서, 성장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생각
19일 부터 새벽예배를 나가는 다짐하였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20일날 부터 시작되었고, 온라인으로 드렸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의문이 있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약간의 대답을 들었다.
처음에는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그리고 하루가 피곤하였다.
온라인 예배를 듣는 날이 쌓일 수록 (몇일 안됐지만…) 하루 세팅값을 새벽예배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10시에 잠을 청하고, 5시 28분 알람에 바로바로 일어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예배 시간에 기억이 안날정도로 잠에 다시 들었지만, 잠이 깨어지고,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새벽예배 설교 때, 아삽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죄의 문제로 미끌어지뻔했던 아삽은 주를 의지하였다. 실족할 뻔 했던 것을 지나고 주님께 감사를 돌렸다.
이처럼, 나의 인생의 초점이 주님께 맞춰져 감을 느끼고, 감사함을 느낀다. 나의 작은 삶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 가정이 축복받고, 함께 성장해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질문
Q) 큐티 챌린지를 통해서 변화되고 있는 나의 삶의 영역은 무엇인가요? (저는 잠의 영역, 일찍자고 일찍일어남)

에보소서 1장

22.06.27

현대인의 성경 ) 13절 ) 그리고 여러분도 진리의 말씀인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를 확인하는 표로 약속하신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14절) 성령께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우리가 받을 것이라는 것을 보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받아 구분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십니다. 15절) 나는 여러분이 주 예수님을 잘 믿고 모든 성도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16절)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을 생각하며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약속
복음이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역사가 있는 에베소 교회의 소식을 바울이 듣게 되었던 것 같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본문을 다시 보니, 바울의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진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실 떄에, 성령님이 오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니는 분!
그런 성령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 성령님을 느끼고, 함께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릴 수 밖에 없다.
힘든 상황, 경제적인 어려움, 마음의 걱정 등이 많지만, 감사함이 절로 나오는 이유는 성령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시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30대가 넘어가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다른사람을 믿고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새삼 느낀다.
불현듯 다른 사람에 대한 불신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얼마전, 인천 출장 길에 올랐는데, 서울역을 거쳐서 가는 긴 여정이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갑작스럽게 걱정이 든다. 저 사람이 나를 해코치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은 션교지에서도 다른 민족 다른 사람을 어떻게 믿지 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본문은 성령님으로 인해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을 믿을 수 있고,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성령님은 현실의 슈퍼파워가 아닐까 싶다.
오늘의 생각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에베소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한다.
나도 누군가를 위해서 중보기도 할 때,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전달하는 기도를 해야겠다.
감사할 수 있는 힘!
오늘의 질문
Q) 성령님의 인치하심을 받으셨나요? 그 때는 언제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