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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서( 22.10.10 ~ 22.10.20)

목차

에스라 10장

22.10.20

12절) 첫째 달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의 일 조사하기를 마치니라
가정의 중심
본문은 에스라의 회개기도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의 부흥이 일어 났다.
삶에서 지은 작은 죄들 까지 모두 회개한다.
그 중에 이방여인과 결혼한 남자들이 큰 이슈가 되었다. 이방여인과 결혼한 것이 어떤 죄이길래… 말씀에 기록되고, 누가 결혼 했는지 까지 전수조사가 들어 간것일까?
그리고 그 여인들을 쫓아 내고 소생까지 쫓아 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정은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기본 단위이다.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가정을 통해서 주님이 역사하신다.
사탄은 핵심인 가정을 가장 먼저 노린다. 가정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 든다.
가정이 흔들리면, 그 사람 삶 전체가 흔들린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좌절하게 된다.
가정은 사회적인 관점으로도 중요하다.
일본의 토요코 키즈라는 신조어가 있다. 토요코 키즈는 가출청소년으로 토요코에 모여서 노숙하는 취약 청소년 층이다. 그들이 온갖 범죄에 노출되는 길거리로 나오는 이유는 가정의 불화가 1순위이다.
가정의 불화로 인해서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것은 다음세대들이다.
가정은 개인적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부부싸움을 하거나,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일에 집중도 되지 않고, 하루 종일 스트레스만 쌓인다.
가정을 흔드는 큰 요인 중 하나가 이방 여인과의 갈등이었을 것이다.
다른 가정과 비교하면서, 세상 가치만을 쫓는 여인이 남편을 힘들게 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막아 세울 것이다.
이방 여인의 특징을 요약하면, 예배를 대적하고, 세상의 가치와 사회적 위치만을 추구하고, 이웃 보다는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특징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가정에도 우리 가정을 흔드는 불안 요소가 있다.
최대한 인내하고, 잘 참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문제가 불쑥 터지면,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버틸 수 있는 것은 성진 소진 가정의 중심에 예수님이 있기에 가능하다.
불안과 좌절감이 엄슴할 때면 주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는 가정이기에 오늘도 힘차게 살아 낼 수 있다.
내가 가정을 깨트리는 이방 여인인지 돌아볼 수 있는 말씀이다.
예배를 사모하고, 세상가치가 아닌 예수님의 가치를 따라가고, 이웃을 돌보는 그런 가정을 세울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해야 겠다.
오늘의 기도
주님. 가정의 아픔을 치유해 주세요. 막힌 관계가 풀려지게 해주세요. 사랑하는 마음 가득 부어 주세요.
오늘의 질문
가정의 아픔이 있나요?

에스라 9장

22.10.19

14절)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죄를 짖는 것은
본문에는 에스라가 이스라엘의 백성의 죄를 회개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잊어 버린 죄와 쾌락에 빠져 나라를 잃어버리는 슬픔에 빠져있지만, 여전히 같은 죄를 짖는 실수를 반복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현장을 본 에스라가 얼마나 애통했는지, 옷을 찢으면서 기도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예배를 회복하고, 자유를 회복했지만,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다시 멸망케 해도 할말이 없다고 에스라는 기도한다.
이런 죄에서 우리를 영원히 구원해 주신 분이 계신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죄에서 자유케 되는 구원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 곁으로 갈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꾸 죄의 유혹에 넘어가는 실수를 반복한다.
신약에서 예수님을 신랑이라고 하고, 우리를 신부라는 표현을 쓴다. 구원을 받은 것이 혼인하는 것에 비유한 표현이다.
우리가 죄를 짖는 다는 것은 외도하는 것이다. 이미 결혼 했는데, 다른 사람과 불륜을 저지르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외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일인가?
오늘도 나의 신랑을 잊고, 죄를 범하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가?
오늘 묵상은 나에게 찔림을 준다.
죄가 죄인지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민감하게 반응할려면 말씀에 깨어 있어야 한다.
말씀에 깨어 있으려면, 회개하고 내가 죄인임을 인정해야 한다. 말씀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과 소통해야 한다.
에스라의 기도처럼 우리도 팬티까지 찢을 수 있는 회개기도를 해보자.
오늘의 기도
자기 합리화에 빠지지 않고,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질문
회개 기도했던 썰은?

에스라 8장

22.10.18

15절)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 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예배하는 자를 찾는 하나님
본문에는 금식기도를 드리는 에스라의 이야기 나온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궁금한 구절이 생겼다. 에스라는 레위 자손을 왜 찾았던 것일까?
구약시대에는 레위 지파만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 받았다.
여호와 핳나님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팀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시뱌 지방으로 사람을 보내어 레위지파 자손을 모았고, 도착하기를 기다리었다.
예배하는 자를 찾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를 지금까지도 찾고 계신다.
마지막 때에 벌하기를 더디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고, 형통하게 해주신다.
최근 나의 예배 드리는 모습은 어떠 했는가?
자모실에서 아이와 함께 드린다는 핑계로 주일 예배에 대해서 상당히 소홀해 하고 있다.
사실상 몸만 교회에 다녀왔지, 마음은 이미 집에 가 있었다.
예배의 모습보다는 나의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다고 묵상을 통해서 찔림을 느꼈다.
예배에 전심으로 드리는 에스라의 모습을 통해서 예배드리는 자의 자세를 배웠다.
오늘의 기도
예배를 전심으로 드릴 수 있는 마음 주세요.
오늘의 질문
지난 주일 예배를 잘 드렸나요? 혹은 마음이 붕 떠 있었나요?

에스라 7장

22.10.17

27절)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본문에는 에스라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자손입니다.
에스라는 엄청난 업적을 달성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하나님 곁으로 자유케 한 일을 해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짖는 데, 바벨론의 황제의 마음을 돌리는 공헌을 세웁니다.
이런 업적을 세우고도 이 모든 일의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바벨론 왕의 마음을 바꾸고, 물질을 풍족하게 하시고, 성전을 보호하는 일 모두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힘들 때에는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을 찾습니다. 고난과 역경의 시기에는 의지할 곳 없이 어김없이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반대로, 성공과 번영, 평강이 임하면, 자칫 겸손하지 못하고, 나의 덕을 자랑하고는 합니다.
잘되는 일에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취업에 성공해도 자격증을 합격해도 많은 수입이 생겨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했기 때문에, 우리가 배고픔과 걱정 없이 살아왔습니다.
건강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음에 감사합니다.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한 하루에 감사합니다.
오늘의 질문
최근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나요?

에스라 6장

22.10.15

22절) 또 7일 동안 누룩을 넣지 않고 빵을 만들어 먹는 무교절을 지켰다. 여호와께서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의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 일에 그들을 돕도록 하셨으므로 그 땅에는 큰 즐거움이 있었다.
즐거움이 가득한
본문에는 성전 건축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이 성전으로 돌아오는 사건도 기록되어 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들었던 느낌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기쁨과 환희와 즐거움이 가득찬 느낌이었다.
그렇다.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은 예수님을 믿는 즐거움이다.
나의 가치관을 세상에 두면, 끊임 없이 목마르다. 기쁨은 잠시 잠깐일 뿐, 영원한 갈증의 늪이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야 된다.
그런 목마름을 예수님은 해결해 주실 수 있다. 삶의 기준이 세상에서 예수님으로 옮겨가면, 불행한 일조차도 기쁨으로 받아드리게 된다.
세월이 갈 수록 웃음 짖는 일은 줄어드는 것이 느껴진다.
주변 사람들의 장례식이 잦아지고, 돈 나가는 일이 가득하다 보면, 기쁜 일에도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이제까지 돈을 우상숭배함을 깨닫는다. 경제적인 자유함을 추구하는 욕심이 가득했다.
조금 더 벌고, 이득을 꾀하는 일에는 머리가 잘 돌아갔다. 그럴수록 기쁨 보다는 스트레스가 더 늘어났고, 삶은 나아진 듯 보이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 되지 않았다.
진짜 즐거움으로 돌아가자. 예수님을 믿는 가정을 세우는 일이 가장 큰 기쁨임을 명심하자. 예수님의 시선이 자녀에게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는 가정의 틀을 가꾸자.
P.S. 소지니와 항상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대한 얘기이다. 싸우고, 미워지는 감정을 들 때면, 사랑하기도 부족한 데 다투기에는 너무 아까운 생각에 금방 화는 가라 앉는다.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정말 짧음이 느껴진다. 부쩍 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더욱 더 사랑해 주리라 다짐한다.
오늘의 기도
진짜 즐거움이 가득한 삶으로 꽉찬 인생을 살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언제 가장 즐거웠나요??

에스라 5장

22.10.14

2절)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움직이는 사람들
2절은 이에 라는 구절로 시작 된다. 이에는 앞구절과 이어지는 구문인 동시에 원인과 결과를 나타낸다.
성전을 다시 건축할 수 있었던 계기가 1절에 나온다. 선지자들의 예언이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움직이게 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동기가 되었다.
순종하여서 성전을 다시 짖기 시작했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도움을 받는다.
결과적으로는 단순하지만, 내적갈등은 최고조에 다다랐을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이미 실패한 프로젝트이다.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외압으로 실패했다.
예상 가능한 내부적 문제는 해결하기가 쉽지만, 외적 요인들은 내 힘으로 제어 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경우가 많다.
또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절망감에 사로잡힌 백성들을 다시금 설득해야 하는 어려움이 가득했을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 프로젝트 실패한 거 아니였어요? 또 망할려고요? 또 복수한다고 길길이 날뛰면 그 감당은 어떻게 하실려고요? 등등
외압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내부의 문제로 앓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깨어있는 영적인 리더들이었다. 선지자의 부름으로 하나님이 명령임을 받아들이고, 실행에 옮겼다.
부정적인 상황은 가득하지만, 하나씩 해결해 나갈 것을 믿고, 앞으로 전진하였다.
한 단계씩 처절하게 영적인 싸움을 하면서 나아갔을 것이다.
에스라 4장과 5장에서 눈에 띄는 점은 성전을 건축의 방해와 다시 진행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성장형 소설의 이야기처럼 기승전결이 완벽하다.
전체적으로 보니 하나님의 완벽한 개입이 보였다.
나의 삶도 하나님의 말씀에 동기부여가 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좌절감과 패배감 가운데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이 말씀을 여과 없이 순종적으로 받아 들이기 원한다.
내 인생의 핸들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이 가득하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나의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할 수 있는 기쁨을 허락해 주세요.
오늘의 질문
말씀이 동기부여가 되었던 경험이 있나요? 무엇이었나요?

에스라 4장

22.10.13

4절)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4절) Then the peoples around them set out to discourage the people of Judah and make them afraid to go on building.
낙담과 두려움
성전 기초를 지은 것도 잠시, 그 땅의 원수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짖는 것을 2년동안 이나 못하게 방해했다. 온갖 악한 방법과 편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다.
원수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그렇게 까지 괴롭힌 본질적인 이유는 2절에 성전 짖기에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자존심을 건드렸고, 미운털이 박혀서 끝까지 괴롭힌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 건축에 대해서 두려움을 심어주고, 그들에게 할 수 없다는 낙담감을 주게 된다.
성전 짖기 프로젝트는 결국 외압의 힘에 실패를 겪게 되었다.
여기서, 믿는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사탄의 전략이 보였다.
먼저는 낙담시키는 작전을 펼친다.
내가 할 수 없다는 좌절감으로 이끈다. 자신감을 잃게 만든다.
주변에서는 계속해서 넌 못한다는 이야기를 끊임 없이 듣게 한다.
나 스스로 절망감의 굴레에서 더 깊은 바닥을 보게 만든다.
그리고 두려움을 가지게 한다.
내가 승리하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게 한다.
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시도조차 못하게 막는다.
이제까지 많은 두려움과 낙담으로 똘똘 뭉친 삶을 살아 왔다.
생각대로 되는 것은 없고, 나 스스로 열심히 살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도 많다.
이런 생각들이 반복되면서, 나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멈췄고, 멈춰있기 보다는 뒤로 후퇴했다.
사탄은 이런 상태로 사람을 몰아 세우기를 즐긴다 . 우울감과 패배감에 인생을 허비하게 한다.
이제부터 낙담감과 두려움이 있다면,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봐야 겠다.
낙담감과 두려움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승화시켜야 겠다.
낙담감과 두려움이 커질 수록 기도와 예배하는 마음을 더욱 단디 먹어야 겠다고 다짐한다.
오늘의 기도
외압의 압박과 두려움이 엄습할 때에 주님의 시선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부어주세요.
오늘의 질문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에스라 3장

22.10.12

11절)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첫걸음의 감동
본문은 예루살렘에 모인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예배를 드리고, 성전의 기초를 놓음으로 기쁨과 환호와 대성통곡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본문 8절에는 2년하고도 2달이 지난 시간에 공사를 시작한다고 나온다.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다른 자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예배를 드렸다. 아침, 저녁으로, 초하루와 절기때 예물을 드리고 여호와를 찬양했다.
때를 기다렸다. 두려움이 가득해서 일을 진행시키지 못헀거나, 하나님의 싸인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성전의 기초를 놓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 마음을 집중하고 있었다.
최근에 가장 큰 감동을 느낀 사건은.
하나가 태어나기 까지 10달, 그리고 첫 탄생할 때의 감동한 사건.
하나가 목을 가누기까지 50일, 고단한 육아를 씻어줄 감동한 사건.
그만큼 기대하고, 노력하고, 힘들었기에 첫 경험에 엄청난 감동이 몰려왔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어떠했는가?
그 때에는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준비하고, 기다렸음을 알 수 있다.
환경을 만들어 주시고, 주변 사람들을 붙여 주시고, 중보해주셨음을 깨닫는다.
나를 구원해 주신 그 사건이 최소한 예수님에게는 엄청난 감동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랜 기억으로 잠시 잊어버렸지만, 예수님을 처음 만나고, 구원의 확신을 얻은 첫 경험의 감동을 생각해 본다. 애기가 태어났던 그런 감동의 사건이었다.
예배의 회복을 위해서 다시 그 때의 감동으로 돌아가 보자.
신앙의 회복의 첫걸음을 내디뎌 보자.
기쁨으로 함성을 지르는 그런 기분으로 매일매일을 살아내자.
묵상대학은 이제 시작이고, 신앙의 초석을 쌓을 수 있는 감동의 순간들을 만끽해보자.
오늘의 기도
무너진 신앙과 삶의 균형을 다시금 회복시킬 수 있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최근 감동적이게 본 영화는 무엇인가요?

에스라 2장

22.10.11

62절) 그들도 족보에서 그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부정한 자로 취급을 받아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지 못했으며
직분을 수행하려면…
본문에는 이스라엘 성전을 짖기 전 지파와 이스라엘 땅의 자손들이 모이는 이야기이다.
새로운 시작과 성전을 짖기 전의 감동과 힘이 느껴진다.
62절과 63절만이 다른 구절과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성전 짖기가 가장 중요한 일인 만큼 예배를 드리는 제사장만큼은 엄격한 기준과 검증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62절 본문을 뒤집어 보면,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려면, 부정한 자가 아닌 순결한 자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악질적인 인테리어 업자의 사기행각의 수법을 유투브로 보았다.
인테리어 계약을 하게되면, 집주인은 계약금 (10%), 중도금 (70%), 잔금(나머지)으로 나누어서 업자에게 비용을 지불한다.
이런 업자들이 싸게해준다는 조건으로 계약금과 중도금을 한꺼번에 받아낸다. 돈을 다 받은 후에는 집 내부를 빠르게 철거하고 자재를 몇개를 가져다 놓는다.
이제 갑의 입장이 되어서, 돈만 달라고 요구하고, 공사는 진행되지 않다가 얼마 뒤 잠수를 탄다.
철거한 것과 가져다 놓은 자재 때문에 사기로 법적인 처벌을 할 수 도 없는 법의 헛점을 노린 사기 행각이다.
인테리어와 같이 중요한 일에서는 우리는 업자를 철저히 검증해야 될 필요성이 있다.
나는 하나의 아빠의 직분과 묵상대학 운영진을 담당하고 있다.
내가 이런 직분을 담당하기에 스스로를 검증해 보았다.
아빠로써 육아 때 충분히 하나에게 집중하고 있나?
아빠로써 아내의 고충을 충분히 잘 이해하고 있나?
운영진으로써 묵상대학의 일정을 철저히 지키고 있나?
운영진으로써 묵상대학 멤버의 힘듬에 관심이 있나?
나는 아빠와 운영진으로써 순결한 자가 되기 위해 힘쓰고 있나 돌아보게 된다.
하나를 돌볼 때는 휴대폰은 내려놓기로 다짐한다.
하나를 돌볼 때 아내의 힘듬을 잘 이해하고, 위로해야 겠다고 다짐한다.
묵상을 할 때에 최선을 다해서 묵상을 하기로 다짐한다.
묵상을 하는 인원의 묵상을 정독하여서, 답변을 달기로 다짐한다.
내가 하고 있는 것. 집중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다른 세상의 가치에 유혹되지 않고, 내가 맡은 직분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
오늘의 질문
내가 감당하는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 내가 고쳐야 될 안 좋은 습관이 있나요?

에스라 1장

22.10.10

11절) 금, 은 그릇이 모두 오천사백 개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갈 때에 세스바살이 그 그릇들을 다 가지고 갔더라
에스라서 사전 지식 ON!
에스라서는 예루살렘의 포로귀환과 하나님의 성전을 재 건축하는 이야기입니다. 바벨론의 포로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레스왕의 지시에 따라서 많은 물자를 지원받아서 포로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그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라로부터 느헤미야까지 100년 동안 성전을 짖는 일과 무너짐을 반복했습니다.
성전을 다시 지을 때마다 포로였던 백성들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회복의 길
여호수아의 시대와는 달리 에스라서의 시대는 이스라엘의 암흑기 였다. 전성기는 지나가고, 나라는 없어져 버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죄를 반복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비현실적인 방법을 통해서 고레스를 변화시킨다.
우리로 따지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천황의 생각을 바꾸어서 우리나라를 해방시켜주고, 오히려 말도 안되는 물자를 지원하여서 나라를 다시금 세우게 한 이야기인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하였다.
1.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
2.
돌아오는 자녀에게 복의 복을 더하심
3.
죄에서 떠나서 믿음을 회복할 수 있게 하심
나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런 나를 예수님이 구원해 주셨다.
죄로 허덕이는 삶을 예수님이 건져주셨다.
물질과 번영과 자녀의 축복을 더해 주셨다.
최근의 삶은 매우 행복하다. 자녀는 건강하게 크고 있고,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
반대로, 묵상 대학 말씀 큐티를 빼고는 예배의 감동과 예배를 향한 뜨거운 마음이 식어 있었다.
유투브로 드릴 때에 누워서 드리고, 자기 위해서 안간힘을 썻다.
게으른 습관과 죄의 습관이 합쳐진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런 나에게도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다시금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예배의 뜨거움이 살아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였다.
지난 과오를 회개하고, 하나님 성전을 짖겠다는 목표를 가진 이스라엘 백성처럼 나도 예배를 회복하겠다는 믿음으로 회개기도를 드려본다.
오늘의 기도
에스라서 말씀을 통해서 예배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질문
예배를 방해하는 주변의 영향이나 나의 잘못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