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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4장 (22.12.14 ~ 22.12.17)

목차

말라기 4장

22.12.17(토)

6절) 그는 아버지의 마음이 자녀들에게 돌아서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이 아버지에게 돌아서게 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그들의 땅을 저주로 치겠다.'
회개하지 않는 마음
구약의 마지막 구절은 회개하지 않으면 땅을 저주하겠다는 무서운 말로 끝난다.
그리고 신약의 마태복음과 이어진다.
이런 무시무시한 말로도 이스라엘 백성과 왕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죄를 범하고 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헤롯왕과 동방박사의 이야기 나온다.
두 부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헤롯왕은 회개하지 않는 죄인이었다. 메시아가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무관심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에 대해서 가쉽으로만 취급할 뿐, 실천하지 않았다.
동방박사는 달랐다. 그들은 예언을 따라 먼 길을 찾아 메시아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많은 재물로 메시아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동방박사와 이스라엘은 회개하는 마음이 달랐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아버지께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이 달랐다.
그 결과는 동방박사에게는 생명을 이스라엘에게는 멸망을 받게 된다.
연말과 크리스마스가 곧 다가온다.
단지, 이벤트로만 크리스마스를 지내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예수님을 기억하는 날임을 기억하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겸손해야 겠다.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원한다.
개인적으로는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말씀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22년으로 기억되기를…
함께 기도
말씀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세요. 회개로 아버지께로 돌아서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질문
크리스마스 계획은?

말라기 3장

22.12.16(금)

1절)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겠다.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너희가 찾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으로 오실 것이다. 그 분은 너희가 사모하는 계약의 사자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영웅
말라기에서 이스라엘의 형식주의와 회의주의의 신앙과 대조되는 예언이 나온다.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이자 사자라고 말한다.
한국사 자격증을 따기위해서 최태성강사님의 EBS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근현대사와 일제강점기를 공부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라가 위기에 있으니 유관순 열사와 같은 어린 영웅들이 등장했습니다. 전시가 아니라서 이런 영웅이 보이지 않는 것이지 우리 삶에서 어린 영웅들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영웅은 위기 속에서 탄생한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있어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말리기 시대 때에 회의주의에 빠진 사람은 곧 오실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위기에서 영웅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씀을 믿고 의지한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오실 것임이 분명하고, 확실시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삶에서도 믿음을 정진시켰을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도 위기가 많다. 이 때에 기회를 바꿀 수 있는 영웅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제 휴가를 쓰고, 암 투병중인 사촌형을 보고 왔다.
140키로의 거구에서 100키로도 안되고,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를 밀은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말씀을 선물로 드렸다. 믿음이 없지만, 죽음의 위기에서 꼭 예수님을 믿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 신기하게도 전날 성경책을 구하러 저녁에 갔는데, 마침 셔터문을 닫고 계셨는데, 다시 열어서 성경책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 모습이 마지막 때에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묘한 확신이 들었다. 주님이 이끌어 주신 느낌…)
사촌형의 암이 치유되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거듭나도록 중보기도를 요청드립니다…
함께 기도
사촌형의 암이 치유되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좋은 마음 밭 만들어 주세요.
오늘의 질문
내 인생 최대 위기는?

말라기 2장

22.12.15(목)

16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이혼 자체를 미워하며 자기 아내에게 그런 끔찍할 짓을 하는 자를 미워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마음을 지켜 너희 아내에게 신의를 저버리지 말아라.'
끝까지 사랑하는 방법
본문에는 신의를 저버린 남편을 이스라엘의 행태를 빗대어 표현한다. 말라기 시대 당시 이혼과 이방여인을 만나는 것이 문화가 되었다.
그럼 왜 가정에 충실하지 않는 모습으로 표현했던 것일까?
아내에게 신실하지 않는 남편의 모습은 선악과를 따다준 하와를 고자질하는 아담의 모습과 닮아 있다.
1.
언약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
2.
이기적으로 가정을 파괴한다.
3.
경건한 자녀를 양육하지 못한다.
외도하는 남편은 한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의 언약을 모조리 무시하는 것이다.
결혼할 때는 좋은 감정때문에, 어떤 힘든 상황과 고난이 오더라도 아내만을 사랑하겠다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정작 고난의 상황이 오면, 제일 먼저 탓을 돌리기 바쁜 사람이다.
가정을 지키는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나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정작 가정을 지키지 않고 나만을 중요시 한다.
외도를 하는 것은 한 가정을 무너뜨리는 행위임을 명심하자.
가정이 파괴 되면, 자녀는 악영향을 그대로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심리는 불안해지고, 정서적으로 혼란스럽다. 가정이라는 지붕이 무너지면, 위태로움 속에서 성장한다. 경건함을 배우지 못한다.
말라기 시대에서 하나님의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는 곧 가정을 파괴시키는 일이 되버리고, 가정이 파괴되면, 믿음이 다음세대로 흘러가지 못한다.
(현재 이혼을 쉽게 생각하는 문화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연애 문화들이 말라기 시대와 닮아 있고, 가정을 병들게 하는 첫 시작임이 느껴진다. 이런 문화가 아내와 남편 서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하나님과 나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것임을…
이방여인을 받아들이는 작은 허용이 민족이 없어지는 큰 결과로 다가올 것임이 안타깝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가정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먼저는 나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처럼 사랑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행하려 하고, 싫어하는 것을 안하게 된다.
나의 성향 자체도 바뀌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싫어하는 신의를 저버린 끔직한 자가 되지 않기를 원한다.
1.
언약을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2.
이타심으로 가정을 돌볼 것이다.
3.
경건한 자녀를 위해서 힘을 다할 것이다.
나의 작은 언약을 끝까지 지키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나님께 한 작은 맹세들을 지켜 행함으로 가능하다.
하나님의 말씀과 가정을 가벼이 여겨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기심을 버리고, 가정의 구성을 이해하게 된다.
이기적인 시선으로 가족을 바라보면, 강압적이고 지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바라본다면, 어떤 모습이든 어떤 행동이든 다 품어 줄 수 있다.
자녀에게 본이 된다. 좋은 울타리가 되어준다.
바람을 막아주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될 수 있기에 믿음의 좋은 양분 또한 전달할 수 있다.
자녀에게 가장 큰 선물은 믿음임을 기억하자.
우리가 끝까지 한 가정과 자녀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함께 기도
하나님과의 신뢰를 회복시켜 주세요. 작은 언약도 지키겠습니다.
오늘의 질문
내가 신뢰를 깨버린 사건은? 혹은 나를 배신했던 사람은?

말라기 1장

22.12.14(수)

14절) 나에게 바치겠다고 약속한 좋은 짐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를 속이고 쓸모없는 것을 바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나는 위대한 왕이다. 모든 민족이 내 이름을 두려워하고 있다.
불만투성이
본문의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성경이다.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의 암흑기를 맞는다.
말라기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신앙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은 목회자의 말을 무시한다.
회의주의에 가득 차있다. 존경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교만과 욕심이 가득하였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에 소홀해 했고, 세속적이게 되어버렸다.
현재의 먹고 마시는 것 외에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그들은 겉과 속이 달랐다.
겉으로는 경건한 척 예배를 드리지만, 속으로는 욕심만을 갈망하였다.
거짓주의의 마음이 팽배했다.
하나님을 드리기에 아까워 했고, 오히려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사한 마음을 잃어버렸다. 하나님께 받은 영광과 은혜를 잊어버렸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지금 한국 교회가 말라기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들이 닮아 있다고 느껴진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지만, 삶에서 분리되어 있다.
내 삶은 세속적이고, 세상의 가치를 쫓지만, 주일에만 교회에서 회개한다.
주일에 예배만 드려도 믿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성경과 역사에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세속적인 가치와 하나님의 가치는 섞일 수 없는 반대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에,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하면, 하나님의 가치에는 소홀해질 수 밖에 없다.
이혼과 이방여인을 만나는 세속적인 가치를 받아들이면서, 마치 작은 다이너마이트가 큰 산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작은 허용이 인생과 민족의 운명을 바뀌게 하였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정욕에 사로잡힌 자. 인간적 정욕과 외로움으로 이방여인을 탐하는 자들이 그러하다.
이런 생각이 전염병 처럼 퍼져서, 교회에서 불만을 표현한다. 말라기 시대 이스라엘 백성처럼 비꼬는 질문으로 지체들을 힘들게 한다. 정죄한다.
작은 욕심과 작은 불만이 나를 병들게 한다. 세속적인 가치를 쫓는 오늘이 내일을 힘들게 한다.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전까지 불만을 토해내는 생각들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님을 인정하자. 물질에서든 시간에서든 인생에서든…
오늘도 작은 불만이 쌓여서 화가 산이 이루었지만… 회개하면서, 기도드린다…
함께 기도
불만으로 가득한 오늘이었습니다. 주님. 세속적인 가치를 쫓는 것이 아닌, 주님의 가치를 사모하고, 살아가는 하루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오늘 불만을 토해냈던 경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