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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0편 ( 22.10.24 ~ 22.11.26)

목차
( 21편은 몸이 아픈 관계로 놓쳤습니다 ㅜㅜ )

시편 30편

22.11.26(토)

2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고침 받는 법
본문에는 나를 고쳐주신 하나님의 구절이 있다.
나의 어떤 부분을 고쳐주신 것일까?
육체적인 부분 정신적인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자.
육체적인 부분은 앉은 뱅이가 일어서고, 눈먼 이가 눈을 뜨는 기적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면역력이 떨어져서, 왼팔에 사마귀가 퍼졌던 일이 있었다. 레이저 치료도 해보고, 약도 발라보았지만, 치료가 되지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새벽예배 때 치료의 기도를 해보았다. 그 다음날 깨끗이 사마귀가 없어진 경험이 있다.
신가하면서도 여호와 라파의 치료의 기적을 믿게 되었던 일이다.
정신적인 부분은 나의 마음이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요동칠 때에 복음을 받아들이면, 잔잔한 바다처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음을 믿기 전에는 모든 불행과 문제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복음을 믿은 다음에는 주변 환경이 아닌, 주님을 바라 볼 수 있는 믿음이 생긴다.
문제가 있어서 힘든 사람에게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마음의 병을 고치시는 분이다.
본문에는 고침 받는 방법도 알려준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다.
부르짖는 것을 생각하면, 앞뒤 상황 가리지 않고, 바지자락이라도 붙잡고 고함을 지르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아픈 곳이 있다면, 고쳐달라고 우리는 명확하고, 긴급하게 기도해야 한다. 주님 우리의 아픈 곳을 만져달라고 말이다.
하나가 태어나던 날 많은 사람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했고, 나 또한 대기실에서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평소 소홀히 여겼던 치료의 기도, 여호와 라파를 찾으며 기도했다.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고, 하나는 진통 2시간 출산 30분 만에 순산을 하였다. 산모의 건강도 하루 병실에서 입원하고, 바로 퇴원할 정도로 좋았다.
우리가 아프고, 힘들 때 우리 하나님을 먼저 찾아 보자. 기도해보자! 간절히! 부르짖으며!
함께 기도
나의 아픈 곳을 만져주셔요. 건강이 좋지 않은데, 건강을 회복시켜 주세요.
오늘의 질문
몸이 아픈 곳이 있나요?

시편 29편

22.11.25(금)

11절)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소리에 담긴 힘
쿵푸허슬 영화에서 사자후가 등장한다. 사자후는 목소리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권법을 말한다.
그 위력도 상당하게 묘사되어서, 영화 작중에서 인상깊은 싸움 장면으로 남았다.
본문에는 여호와의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알려준다.
여호와의 소리는 화염의 모습도 있고, 광야를 진동시키고, 동식물을 밀어버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묘사 된다.
이런 힘이 있는 여호와의 소리는 백성에게는 힘을 주시고, 복을 주시는 평강의 소리이다.
믿기 전에는 여호와를 찬양하는 찬양의 노래가 듣기 거북했다. 그런데, 구원 받은 이후에는 어떤 노래보다 달콤했고,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었다.
(신기했던 경험: 하나에게 클래식 피아노 소리 들려주면 울고, 찬양 소리 들려주면 얌전해 짐! ㅋㅋ)
또, 믿지 않는 친구에게 듣고 있던 찬양을 들려주었는데, 듣기 거북해 했다. 소림이 끼친다는 표현으로 노래를 바꾸던가 끄던가 하라고 했다.
수리남의 대사가 생각난다. “너 사탄들렸어?”
본문의 말씀에서 소리가 힘이 있다는 말이 진심으로 느껴진다. 본문의 내용이 단순한 비유가 아닌 실제 사건임을 믿는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소리를 내어 주님을 부르짖어라!
믿는 우리에게는 복되고, 힘을 낼 수 있는 보약이다!
우리의 영을 살리는 영적인 보약이다.
오늘 찬양을 들으며, 부르며 하루를 힘차게 보내기를 축복한다.
함께 기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소리가 내 삶의 구석구석 들리도록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찬양을 듣고 힘이 났던 적이 있나요? 무슨 찬양 인가요?

시편 28편

22.11.24(목)

3절) 악을 행하는 악인들과 함께 나를 벌하지 마소서. 그들은 자기 이웃에게 다정하게 말하지만 그 마음에는 증오가 가득합니다.
마음 속에 담겨져 있는 것
설교시간에 이런 말을 종종 듣고는 한다.
교회에서는 친절한데, 집에서의 엄마는 무서워요. 그래서 교회에서만 엄마를 보고 싶어요.
예배 때 교회에서는 친절한데, 삶에서는 세상 사람보다 더 악하게 굴어요!
왜 우리는 주일에만 좋은 사람이고, 삶에서는 그렇지 못할까?
그 마음에 증오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질투와 허영심이 가득한 본심은 꼭꼭 숨기고, 단순한 종교활동만을 지향해서 그렇다.
믿음의 설교와 말씀이 삶에 적용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삶에 실천하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한다.
삼시세끼 밥먹는 것 처럼 말이다.
(들숨에 주님을 날숨에 믿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좋다. 찬양을 들어도 되고, 기도를 해도 되고, 말씀을 묵상해도 좋다. 주님을 기억하기 위한 장치를 하나 마련하자.
그리고 실천하자. 오늘 주신 마음을 그대로 삶에 실천하자.
술을 10잔 마시던 것을 5잔으로 줄이고, 욕을 10번 했던 것을 5번으로 줄여 나가자.
나는 먹탐에 폭식 했던 것을 반으로 줄이는 연습을 해야겠다.
몸무게와 영적 성숙은 반비례라고 느껴지기 때문에, 몸은 다이어트를 영은 살을 찌워야 겠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나의 마음에 좋은 것들 주님의 것들만 담는 삶을 살아내자!
함께 기도
주님이 주신 선한 마음만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오늘 내 마음에 담고 있던 것은?

시편 27편

22.11.23(수)

9절)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분노로 주의 종을 버리지 마소서.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습니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나를 떠나지 마소서.
주님과의 삼각 관계
주님과의 삼각 관계라는 것은 가정에서 배우자와 나사이에 주님을 두는 관계를 말합니다.
나와 배우자 사이에서 잘먹고 잘살거나 치고박고 싸우는 것이 아닌, 항상 주님과 함께 연합된 관계 안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님의 얼굴을 구한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가정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다.
부부는 크고 작은 부부싸움을 하고 난 후 주님께 회개하는 기도를 함께 해야 한다.
부부는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주님께 감사함을 돌려야 한다.
가정의 중심이 남편, 아내 에서 추가로 주님이 있어야 한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주님 시선과 주님이 항상 함께함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윗은 환난 가운데에서도 주님을 찾았고, 주님은 외면하지 않았고, 목숨을 건져주시고 구원해 주셨다.
우리 가정에도 아픔과 슬픔이 있다. 그런 아픔을 둘이서 해결하기 보다는 함께 기도하면서 주님께 맡기고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주님과의 삼각 관계가 잘 형성 되었다면, 주님이 바라보고 있는 곳을 부부가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나에게는 선교의 비전이 있다. 하지만, 나 혼자서 한다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먼저는 아내와 함께 연합해야 한다. 가정이 평안해야 평안함을 선교지에서 흘러보낼 것이 아닌가?
그리고 주님과 연합해야 한다. 죄의 문제로 항상 도돌이표인 인생이 아닌 다음 단계로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 학교를 졸업 하고 수능을 보고 취직을 하여서 여기까지 온 것처럼 신앙도 졸업식과 시험을 통해서 성장해야 할 것이다.
주님의 시선이 바라보는 곳을 아내와 함께 바라보면서,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
제자리에서 자꾸만 주저 앉지만, 한걸음 옮겨 보는 것.
주님과의 삼각관계 안에서 할 수 있다.
조급함이 아니라, 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함께 기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구합니다. 나를 보호하시고, 삶의 영역에서 승리를 주세요.
오늘의 질문
내가 꽂혀 있는 것은?
(휴대폰을 켠다. 스크린 타임을 본다. - 내가 가장 많이 킨 앱은? - 유투브 3시간.. 후덜덜…. ㅋㅋㅋㅋ)
(유툽 미쳣고..)

시편 26편

22.11.22(화)

4절)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안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허 한자, 망 한자
본문에는 힘든 상황과 죽을 것 같은 순간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다윗의 고백이 나온다.
그 중 4절의 말씀이 교훈이 되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태어날 때는 부모님을 따라한다. 부모행동과 말이 아이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친구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진다.
성인이 되어서는 누구를 사귀고, 어떤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지에 나의 정체성이 결정된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이를 보면 부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학창시절 친구들을 보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 수 있다.
누구를 사귀고, 누구와 시간을 보내는 지 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 성향을 알 수 있다.
본문의 4절을 보면서, 다윗도 자신의 과거에 허망한 자와의 동행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해악이 되었는지 짐작해 본다.
우리에게 믿음의 사람들이 주변에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묵묵히 옆에서 지켜주고, 기도해주는 동역자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허한 사람과 같이 있다보면, 기가 빨린다.
망한 자와 함께이면, 나도 곧 망자가 될 것이다.
허하고 망한자 허망한 자에게서 멀리 떨어지자.
허하고 망한자를 거르고 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또한 말씀에서 답을 찾았다.
12절의 말씀처럼 무리 가운데에서도 여호와를 송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라.
가끔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난다.
유익하지 않고, 친구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고 공감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 와중에도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한다. 매번 공격을 당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설명한다.
허하고, 망한자의 가운데 있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송축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통로임을 명심하자.
그들 가운데에서 빛으로 일어나자. 허망한 자의 말에 휘둘리지 말자.
함께 기도
주님을 송축합니다. 나의 일터에서 세상사람들에게 욕먹더라도 주님을 찬양하는 일을 계속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헛되이 보냈던 시간은? 그 때 누구와 함께 였나요?

시편 25편

22.11.21(월)

9절)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벌거숭이
애기를 목욕시키기 위해서, 옷을 벗기고 몸 구석구석을 깨끗이 씻긴다.
문득, 애기는 벌거 벗고 있어도 사랑스러운데, 성인은 벌거 벗고 있으면 부끄러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애기는 순수해서, 벌거 벗어도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성인은 죄를 범하면서, 옷으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재밌는 상상을 신앙에 적용해 보았다.
나의 영혼이 아이와 같이 때묻지 않을 때는 하나님 앞에서 벌거 벗어도, 사랑스러울 것이다.
나의 부끄러운 치부와 어떤 것을 하나님께 가져가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죄악에 얽메이고 계속해서 범죄하면, 영적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벗어난다.
하나님께 벌을 받고, 부끄러움에 자신의 치부를 가렸던 아담처럼 옷을 입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나 뵙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와 같이 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린아이와 같이 될려면, 깨지고, 겸손해 져야한다. 나의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회개를 할 수록 나의 영혼은 어린아이 같이 될 것이다.
어린아이와 같은 영혼이 되면, 우리는 어떤 것을 얻게 될까?
본문에는 그 답을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도해주신다. 하나님의 도를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의 지도를 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일까?
하나님의 방식을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일까?
온유한 자,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함께 기도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나의 순수했던 시절은 언제인가요?

시편 24편

22.11.19(토)

1절)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당신은 영광의 왕
하나에게 자장가로 당신은 영광의 왕 찬양을 불러준다.
찬양이 좋아서도 불러주지만, 예수님을 영광의 왕, 왕중의 왕으로 찬양하는 노래이기에 불러준다.
하나가 예수님을 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우리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땅과 세상의 주인이시고, 거기에 살고있는 자들의 왕이시다.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는 왕이시다.
전쟁을 주관하시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 다행이고, 복된 것임을 깨닫는다.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사람들은 무언가를 믿고, 의지 하며 살아간다.
돈을 믿는 사람들은 돈을 자신의 신으로 여긴다.
권력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권력을 위해서 자신을 우상으로 만든다.
나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믿으며 살아간다.
각자가 믿는 것에 따라서, 정체성이 정해진다. 메이플 게임에서 직업을 선택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나의 정체성은 왕중의 왕, 천국에서 영광을 받으실 예수님의 백성이다.
천국의 비전을 품고, 흔들리지 않는 하루를 살아내자.
함께 기도
영광의 왕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질문
오늘 King 받았던 일은 무엇인가요?

시편 23편

22.11.18(금)

2절)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목마른 내 영혼 주가 이미 허락한 - MZ세대
11월 17일에 23년도 수능이 끝났다.
새로운 세대가 사회로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이번 23년도 세대는 어떤 가치를 위해서 살아 왔을 까? 궁금증이 생긴다.
나는 11년도 수능을 치룬 세대이다. 현재 90년대 초반 생들은 약간 MZ 세대의 중간쯤 있다고 느껴진다.
무슨 말이냐면, 80년대의 공동체 중심의 태도도 있고, 90년대 후반의 개인주의 중심의 태도가 섞여 있다.
후라이드반 양념 반 같은 느낌이다.
단적인 예로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80년대 생들과 90년대 후반 생들의 업무하는 방식과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직원 인사를 안하다는 것이고, 공동체 중심의 직원은 항상 무언가를 같이해야 된다는 점이 세대차이가 남을 느낀다.
반반 섞여 있는 시점으로 두 세대를 이해하면서, 동시에 불편함을 느낀다.
90년대생들은 왜 이렇게 개인주의 성향이 심해졌을까를 고민해 보았다. 무한 경쟁 사회 시스템에서 친구보다는 경쟁자라는 인식이 잡혀있음을 느낀다.
비록 친구이지만보다는 저 친구 보다는 잘 살아야 하는 경쟁 심리가 무한 이기주의, 무한 개인주의로 자리를 잡힌 것은 아닐까 조심히 예측해 본다.
이런 세대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업무 스트레스, 관계 스트레스, 경제 스트레스 살아가는 모든 것이 스트레스이다.
그래서인가 “나는 자연인이다”와 같은 자연 힐링 예능을 주로 시청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본문에는 목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한다고 한다.
예수님이 극심한 스트레스 환경 속에서 쉼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을 약속하신다.
17년도에 갤러리아 앞에서 본문의 내용으로 길거리 메세지를 전한 적이 있다.
주된 내용은 치열한 경쟁과 무한한 갈증에 허덕이는 청년들에게 진정한 쉼과 안식처가 있는 예수님을 전하였다.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만약 내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면, 사회적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면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예수님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명이다. 5년 동안 신앙적으로 성장했고, 앞으로도 더 성장할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진정한 쉼과 목마름을 해결하는 기쁨을 누리면 살고 있다.
함께 기도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누리는 특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질문
목말라서 토해본 적 있나요?

시편 22편

22.11.17(목)

30절)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대대 손손, 자자 손손
분당 우리 교회 이찬수 목사님의 말씀을 유투브를 통해서 시청하였다.
마음의 눈 밝히기 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달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인생에서 안목은 참 중요하다고 하셨다.
리더의 안목은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고, 어머니의 안목은 자녀를 미래를 결정 짖는다.
신앙의 눈을 열어서 주님의 시선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자는 메시지였다.
이 중 자녀의 안목을 기도하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자녀를 위해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을 지니는 능력을 달라는 기도가 마음에 와 닿았다. 나의 자녀를 위해서 이런 기도를 해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인생에서 안목은 참 중요하다.
수능 시험 보는 고 3때 지금의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면?
20살 때 믿음이 있어서 신앙의 시선으로 살았다면?
첫 취업 때 직장인의 시선을 가졌다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 중 신앙의 시선을 가지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지금 60대의 시선으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어떨까? 60대의 나에게 어떤 것들이 의미가 있을까? 고민해 보았다.
본문 30절에서 후손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정말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열심히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신앙 생활을 하는 모든 이유가 바로 후손과 이웃에세 주님을 전하는 것이다.
신앙의 모든 활동의 목표가 복음을 전달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나머지를 다 잘해도, 복음을 전달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면, 반쪽 짜리 신앙이라고 생각된다.
제일 먼저는 자녀에게 복음이 전달 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신앙의 안목으로 험난한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내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자녀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함께 기도
신앙의 본질은 복음 전달음을 깨닫습니다. 저에게도 복을 전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 주세요.
오늘의 질문
나의 안목을 평가한다면? 10점 만점에 몇점?

시편 20편

22.11.15(화)

9절) 그들은 비틀거리고 넘어지나 우리는 일어나 든든히 서리라.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비틀거리고 넘어지는 것은 어떤 것일까?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이 연상된다. 더 이상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세상의 자랑은 무엇일까?
건강, 재산, 외모, 배우자 등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내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상적인 가치는 유한하다. 불안정하고, 쉽게 바뀐다.
교회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예수님을 자랑하는 말은 드믈다고 느껴진다.
세상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집, 차, 돈벌이 등을 신나게 이야기 한다.
예수님 이야기는 예배 시간이나 간증 시간에만 이야기 해야하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 것만 같다.
세속적인 가치에 물들게 되면,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쓰러질 수 밖에 없다.
세상의 가치는 변할 수 밖에 없기에…
일어나서 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검과 방패를 들고, 굳건히 서서 적들과 싸우는 모습이 연상된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다. 영원하다. 무한하다.
예수님을 자랑하고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예수님 한분만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입으로 자랑할 만한 것은 예수님이 하신 일임을 기억하자.
신앙의 스쿼드 훈련으로 양다리로 굳건히 서자.
쓰러져 있는 나의 영혼을 일으켜 세우자.
일어나! 다시 한번! 힘차게 살아보자!
함께 기도
일어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세요. 다시 한번 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 주세요.
오늘의 질문
일어나기 싫은 날은?
일어나 - 김광석

시편 19편

22.11.14(월)

10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달달한 말씀 : 카라멜 마끼야또 보다 더
본능적으로 우리는 단맛을 좋아한다.
달콤한 초콜렛을 좋아하는 아이는 있어도, 쓴약을 좋아하는 아이는 찾아 보기 힘들다.
본문에는 성경. 하나님의 말씀이 송이꿀보다 더 달고, 순금보다 더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단것이 땡기고, 금을 보면 갖고 소유하고자 하는 것보다 더 말씀이 좋아야 맞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포함) 말씀을 듣지 않고, 보지 않고, 감탄고토 해버리는 것일까?
좋은 것이라는 데 사람들은 쓴 약처럼 취급을 해버리는 것일까?
문제는 나의 입맛이다.
코로나에 걸리면 후유증으로 미각을 상실한다.
미각을 상실하면, 미슐랭 5성급 요리를 먹어도 고무씹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혹이라는 질병에 걸려 우리는 영적 미각을 상실한 상태이다.
세상의 가치와 사탄의 유혹은 우리의 영적 미각을 잃게 만든다.
영적 미각을 잃게 되면, 말씀은 쓰고, 세상은 달콤하게 느껴진다.
말씀은 뱉고, 세상의 독은 달게 된다.
미디어를 찾게 된다. 육체의 정욕과 물질적 탐심에 살게 된다.
한마디로, 섹스와 스포츠와 스크린(미디어)에만 입맛이 달게 된다.
3S에 중독되면, 나태함과 무기력과 방황을 하게 된다. 세월을 잃어버린다.
말씀이 달게 느껴질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입맛을 바꿔야 한다. 세상으로부터 베인 습관을 버려야 한다.
습관을 버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죄인임을 인정해야 회개할 수 있다.
회개를 통해서 말씀이 달게 느껴질 수 있다.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 해야 말씀이 달아질 것이다.
이미 구원받았지만, 미각을 잃어버렸다면?
죄는 독감이다. 매년 독감 백신 주사를 맞는 것처럼 우리 삶에서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올리고, 회개해야 한다.
달달한 말씀으로 거룩한 당뇨에 걸리자. 세상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말씀의 단맛을 맛보자.
함께 기도
하나님 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달게 느껴지게 해주세요. 말씀으로 살아갈 떄 진정한 기쁨과 감사를 느끼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말씀이 달달함을 경험해봤나요? 어떤 순간이었나요?

시편 18편

22.11.12(토)

36절)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
말 좀 듣자!
대출을 받아서 코인으로 도박한 친구의 근황을 들었다.
물론 돈을 빌리기 위해서 연락을 했다.
그 녀석은 학창시절 공부도 잘했다. 집도 유복하다. 친구들도 많다.
그래서 세상을 잘 살고 있다는 자부심도 강하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핑계로 졸업유예 후 4년이라는 시간을 독서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마저도 코인 차트를 보면서 시간을 지냈을 것이다.
그리고, 돈을 다 잃고 이제 당장 내야할 돈이 필요하니까 친구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면서 동시에 한심하고, 답답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조언을 하고, 해결할 방법을 알려줘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친구한테 돈빌리고 돌려막기 하려는 생각만 먼저하고, 내가 가진 욕심을 내려 놓지 않는다.
자신의 신세한탄을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코인쟁이 말은 들어도 친구말은 듣지 않는다.
문득 내가 하나님께 그러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이야기 하는 기업을 알려줘도, 내가 변화되거나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님한테 나도 코인으로 망한 친구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알려줘도 똑같은 삶의 습관으로 돌아가서, 똑같이 패배자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변화되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느껴진다.
소지니도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육아로 지친 삶을 변화시키는 변곡점이 되었다.
나도 그런 소지니를 본 받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길을 조금씩 걸어감을 소망한다.
이제는 하나님 말을 좀 들을 시간이다! 하나님 말씀 좀 듣자!
함께 기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주신 기업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질문
학창시절 내가 말 안들었을 때는 언제였나요?

시편 17편

22.11.11(금)

6절) 하나님이시여, 주께서 응답하실 줄 알고 내가 주를 불렀습니다. 나에게 귀를 기울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절박함
본문의 다윗은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한 나라의 왕이, 하나님을 믿는 형제가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고 군대를 모아서 쫓아오는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얼마나 답답하고, 마음이 무겁고 스트레스가 심했을까? (스트레스성 원형탈모 예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수류탄 속에서 살아 남은 러시아 병사의 영상을 보았다.
3발의 수류탄이 드론으로 부터 떨어졌다.
첫번째 수류탄은 불발탄이 되어서 등에 떨어졌다.
두번째 수류탄은 배에 떨어졌지만, 1초안에 다른곳으로 던져서 몸에서 터지는 것을 모면했다.
세번째 수류탄은 다행히 멀리 떨어졌다.
자신의 목숨을 계속해서 노리는 저 절박한 상황이 공감되었다.
원치 않는 전쟁에서 허무하게 죽어가는 것을 잘 느끼게 해주는 뉴스였다.
내 삶에서도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꼭 해야할 것들이 있다. 꼭 해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커리어 경력도 있고, 묵상대학을 키우는 일도 있고, 교육자료를 만드는 일들이 있다.
이제까지 주님께 의지하기 보다는 나의 힘으로 해결하고자만 했었다.
절박 할수록 주님께 의지해야 함을 본문이 알려준다.
주님은 언제나 응답하시고, 나의 기도에 귀를 귀울이고 있음을 인지하자.
언제나 나의 뒤에서 힘주시고 있음을 믿자.
함께 기도
절박함으로 기도하면, 모든 일이 잘 해결 될 것임을 믿습니다. 아멘.
오늘의 질문
지금 당장 해결해야 되는 절박한 문제나 일이 있다면?

시편 16편

22.11.10(목)

11절)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안빈낙도
오늘 오전에 자동차 점검을 하고, 수통골에 하나하고 소지니하고 데이트를 나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다. 소소한 일탈의 기쁨일까?
돌짜장을 먹었다. 맛있다.
탕슉을 먹었다. 맛있다.
배가 불렀다. 기분이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과 맛있는 음식은 삶의 행복감을 준다.
일상의 행복을 지키는 비법이 있다.
가정을 지키는 비법이 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 나의 영혼을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본문에는 그런 기쁨이 주님과 함께 있다고 고백한다.
말씀으로 성장하고, 찬양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가정이 되기를 희망한다.
하나에게 말씀으로 주님을 가르치고, 찬양하는 것이 아빠로서 목표이다.
소소한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이 큰 소망이다.
(기타 연습을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찡긋)
함께기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이 주신 행복한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질문
행복해서 도파민 뿜뿜한 기억은?

시편 15편

22.11.09(수)

5절)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흔들리지 않는 방법 - 관계
본문에는 악인의 특징이 나온다.
악인은 관계를 중히 여기지 않는다.
인생의 문제 대부분은 관계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팔아서 나의 배를 채운다.
다른 사람을 경쟁 상대로만 여긴다. 돈벌이로만 여긴다.
이런 사람의 삶이 겉에서 보기에는 부유해 보일지도 모른다.
속으로는 불안감과 나를 헤치는 다른 사람이 나를 해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지옥같은 나날을 보낼 것이다.
마약왕의 삶을 상상해보라. 그들은 악한 방법으로 떼돈을 벌지는 몰라도, 목숨을 잃는 불안감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영화에서 깡패의 삶은 멋지게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는 돈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형님이 되기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없어지는 순간, 밑에 사람들에게 칼을 맞는다고 한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항상 두려움에 흔들린다. 그 두려움을 잊으려고 자극적인 것들을 찾는다. 술과 마약과 성적인 타락에 빠져든다.
흔들리지 않는 삶은 악인과 반대로 행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고, 친절을 베풀고, 나의 몸과 같이 여겨서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하면 된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손해도 볼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깍아 내려서 나를 높히는 것을 금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똑같다.
하나님과 신뢰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과 약속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인생을 흔들림 없이 살아 낼 수 있다. 목표를 향해서 하루를 열심히 살 수 있다.
나의 인생의 해결하지 못한 문제로 인해 근심걱정이 있다면, 문제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먼저 집중해 보라.
함께 기도
관계를 회복 하기를 원합니다. 죄의 굴레를 끊고, 하나님만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질문
관계 떄문에 힘들었던 적이 있나요?

시편 14편

22.11.08(화)

3절)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욕구 5단계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이 있다.
사람의 욕구를 5단계로 분류한 이론이다.
욕구의 단계가 올라 갈 수록 상위 욕구이고, 아래로 내려갈 수록 하위 욕구이다.
자아실현을 제외한 욕구는 결핍 욕구로 부족하면, 삶이 불행해진다.
자아실현의 욕구는 개인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여서 얻는 성장욕구이다.
아기를 보면, 본능의 욕구가 있는 것을 느낀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아프면 울어야 하고, 배설하고 싶은면 힘을 주면서 싼다.
하나는 아기니까 생리적 욕구만 추구한다. 부족하지 않게 힘차게 운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신체가 성장하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올라가더라도, 생리적 욕구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
이기적인 욕구만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악인들은 욕구만을 탐식하는 욕구불만족 종족이다.
( 성매매를 죄책감없이 단순한 수요와 공급의 시장으로 여기는 사람들.
해외 원정을 떠나고 자랑하는 40대 아저씨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느꼈다.
성장하지 못하면, 악인이 되기 쉽구나…를 느낀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은 사회적 욕구, 안전의 욕구, 존경의 욕구만를 만족하면서 살아간다. 그 이상의 것은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신앙에서도 단계가 존재한다. 내 수준에서 정확한 구별을 하기는 어렵지만, 초심자반, 확신자반, 성장반을 구분한 것처럼 신앙 성장의 단계가 있다.
아직 받기만하는 신앙 생황을 하고 있다면, 생리적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자아실현을 위해서 힘써 달려야 한다. 주님의 비전을 목표로 사역과 신앙의 성장에 정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인정받고자 하는 신앙, 존중받는 신앙, 인간적 신앙에서 머무른다.
비전을 찾지 못하는 신앙에서 머물다 보면, 본질적인 예수님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십자가를 두른 악인이 된다.
악인이 많게 되면, 그 악인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들까지 선행하기를 포기한다. 연쇄작용처럼 말이다.
매드맥스 영화에서 미친 세상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미친사람이고, 미친사람이 정상인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런 세상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늘 성장하는 신앙으로 살기를 소망한다.
결론은 주님의 비전을 목표로 하고, 자아실현의 욕구처럼 신앙을 성장시키는 일에 힘써 노력해야 한다는 메세지이다.
함께 기도
비전을 꿈꾸고, 달려갈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본능적으로 하는 나의 행동이나 말은? (ex, 3끼 챙겨먹기, 허기지면 폭식하기 등 ㅋㅋ)
혹은 자주 쓰는 말이나 자주하는 행동은?
오늘은 월식의 날 ㅋㅋ

시편 13편

22.11.07(월)

2절) 내가 언제까지 번민하며 하루종일 슬퍼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내 원수들이 나를 이기겠습니까?
시작이 반
본문에서 번민과 슬픔으로 하루종일 보내는 다윗의 모습이 상상 된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에 처절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실천이라는 것을 놓치고는 한다. 고민과 번민으로 기도하지만,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개발자로 일 하면서, 항상 배울 것이 넘쳐났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두려움이 있다.
언제 이거를 또 하지?
지금 당장 해야하는 데 어디서 부터 배워야 하지?
필요한 것만 할 수 는 없나?
여러가지 고민들을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면, 시간만 지나가 있다.
개발자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무엇이든 코드를 짜보는 것이다. 일단 써내려가는 것이다.
코드를 작성하다 보면,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
모르는 것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배워서 채워 나가면 된다.
이렇게 한단계 씩 10번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완성 되어 있다.
그래서 일단 해보는 것이 개발자의 중요한 태도 중 하나이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취업준비생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소개서 4문항 500자씩 쓸려고 하면, 막연하고, 막막하다.
한 문장도 쓰지도 못하고, 커서만 깜빡이는 것만 바라보면서 달밤을 지새운다.
일단 작성해봐라! 그러고 하나씩 고쳐나가면 된다. 논리를 만들어가면 된다.
처음이라서 오래걸리고 짜증나고 귀찮은 일이겠지만,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면 자기소개서는 빨리 작성할 수 있는 쉬운 단계가 될 것이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에서 중요한 것도 일단 해보는 것이다.
말씀을 읽어보는 것. 묵상을 해보는 것. 기도를 해보는 것. 찬양을 불러 보는 것. 사역을 해보는 것. 전심으로 주님께 삶을 드려보는 것.
그렇다면, 신앙의 방향과 길일 보일 것이다. 예수님을 만날 것이다.
선교의 비전을 꿈꾸고 있다. 당장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하다.
IT 교육과 관련된 봉사를 시작하였다. 봉사 활동이 선교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묵상대학으로 묵상을 말씀 읽는 연습을 하고 있다. 신앙의 성숙하기 위한 첫 시작임을 느낀다.
하나씩 차근 차근 쌓아가다 보면, 주님의 비전을 이루는 그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시작이 반이다!
함께 기도
고민과 번민을 극복하고 실천하는 하루 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시편 12편

22.11.05(토)

1절)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인생은 한방
1년 전 물가 가치가 높아지고, 부동산가치가 급속도로 높아졌다.
주식시작의 호황과 코인시장의 급상승으로 너도나도 주식과 코인 시장에 뛰어 들었다. 높은 수익률로 이익을 보기 위해서 뛰어 들었다.
집값 상승으로 일반적인 월급으로는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면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주식시장은 폭락했고, 코인은 사라지고, 사기로 밝혀졌다.
여기서 청년세대는 한탕주의라는 질병에 걸리게 된다. 차근 차근 쌓아서 인생이 편해지지 않는 다고 생각하거나 이미 뽕맛을 본 마약 중독자 처럼 노동의 대가로는 성에 차지 않게 되었다.
내 친구 중에서도 코인 시장에 뛰어든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공무원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독서실에서 코인을 하였다. 문제는 대출을 받았다는 것과 이미 10만원으로 500만원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다.
결국 모든 돈을 잃어버린 친구는 빚더미에 앉게 되었지만, 아직도 돈만 있으면 코인으로 재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시대상은 믿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성실히 말씀 읽고, 나의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것 보다 세상적인 가치를 더 중시 여긴다.
충실하고 성실한 자세보다는 한탕에 빠진 채,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 조급함을 낸다.
열심히 사는 것을 마치 바보로 취급받는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비열하게 산다고 하면 우리가 사는 사회와 세상이 얼마나 악인으로 꽉차게 될 지 상상하기 싫다.
이럴 때일 수록 우리는 분별하는 시선과 기준이 필요하다.
악한 시대를 본 받지 말고, 기본기와 근본적인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묵상 대학이 우리의 삶의 신앙적 기준과 근본이 되기를 소망한다.
함께 기도
악한 시대를 본 받지 않고, 말씀에 충실한 자로 세워주세요.
오늘의 질문
지금 시대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단어나 기술은 무엇인가요? (1가지만!)

시편 11편

22.11.04(금)

7절) 여호와는 의로우셔서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니 정직한 자가 그의 얼굴을 보리라
벌거 벗겨진 임금님
벌거 벗은 임금님 이야기는 한 임금이 아첨하는 신하의 말을 믿고(체면을 중시함),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옷을 입고 대중 앞에 벌거 벗은 채로 나타난 이야기이다.
체면과 착한 사람이어만 한다는 압박감에 정상적이지 못한 일을 행한다. 창피함을 몰랐다.
본문에는 악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악인은 벌거 벗은 임금님이다. 발가 벗고 있지만, 창피함을 모른다. 부끄러움 보다는 체면치레와 명분을 중시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모른 채로 살아간다. 죽음의 골짜기에 다다르고 있어도 모른채로 걸어가고 있다.
나도 지금 벌거 벗고 있는 상태가 아닌지 돌아 본다.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지 생각해 본다.
인생의 힘듬과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잊고 악인처럼 행동하고 있는지는 아닌지 점검해 본다.
이미 아첨꾼 신하의 말에 넘어간 나는 발가 벗거진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다.
깨닫기 위해서는 3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벌거 벗거진지 아닌지 분별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시선으로 임금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삶에서 여행은 내 인생을 멀리서 바라 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선교는 나의 신앙 생활을 돌이켜 볼 수 있는 하나님이 부여한 사명이다.
내 삶의 중요한 분기점은 17년도 오키나와로 떠난 비전트립이다.
비전트립이전에는 자아로 꽉찬 박성진이었다.
선교를 위해 준비하며,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선교지를 다녀오며, 민족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취업 준비라는 압박감에 스스로를 옭아 매었지만, 선교의 미션으로 먹고 마시는 문제에 대한 걱정보다 더 큰 하나님의 세계가 있음을 피부로 느꼈다.
그로 인해 생각이 바뀌었고, 생각이 바뀌니 좋은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좋은 습관이 생기니, 삶이 달라졌다.
그 후 4년의 시간 동안 풍요로워 지고, 가정이 생기게 되었다. 축복이 넘쳐났다.
인생에서 취업과 대학교는 전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는 사건이었다.
발가 벗거진 상태에서 하나님의 의복을 입게 된 순간이었다.
본문에서 의로운 하나님은 정직한 자만이 그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벌거 벗거진 악인에서 의로운 의복을 입은 사람으로 거듭나자.
하나님은 악인을 벌하시는 이유가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임을 기억하자.
함께 기도
발가 벗은 상태를 알게 해주시고, 의로운 의복을 입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발가 벗은 꿈을 꿔본 적 있나요?

시편 10편

22.11.03(목)

11절)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잊어버리고 그 얼굴을 가려 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악인과 같이 하지 않고
본문에는 악인들을 심판하기 바라는 다윗의 악인들을 향한 분노가 느껴진다.
악인들은 교만하고 거만하여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없다고 여긴다.
그리고 잘 되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의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다.
그리고 우둔하다.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는 식으로 시야가 좁다.
처음부터 악인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을까? 악인은 어떻게 되어가는 것일까? 고민해 보았다.
현실을 살고,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참 많다.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관계의 문제에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 방어기재로 악독해 질 수 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 나를 위해서…
사회속에서 열심히 살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이기적이고, 악인의 속성에 가까워 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말씀 읽는 것은 어렵다. 10분도 어렵다. 반대로 미디어는 10시간이고 볼 수 있다. 재밌다. 자극적이다.
인간의 본성은 악이기 때문에, 노력 없이는 선한 방향으로 선회하기가 힘들다.
신앙적 생각을 멈추고, 기준 없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나 또한 악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더 지독한 악인 말이다. 교회다니는 악인. 위선적인 악인. 배면복검하는 악인 말이다.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악인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된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찬양하는 것이면 된다.
생각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면 된다.
미디어를 멀리하고, 금식하여서, 시간과 세월을 아껴, 말씀을 읽기 위해서 힘써 노력 하면 된다.
말은 쉽지만, 삶에서 실천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묵상대학을 만나는 사람마다 홍보하고 다닌다.
청년들이 말씀의 전문가가 되기를 희망해서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묵상대학이 말씀을 다음세대에 전하고, 청년들을 살리는 도구가 될 것임을 믿는다.
삶에서 말씀을 실천하게 만드는 엄청난 일들을 해낼 수 있는 귀한 보물이 될 것을 믿는다.
함께 기도
하루에 나의 생각을 주님께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세요. 5분이라도 좋습니다.
오늘의 질문
오늘 5분만 주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어떤 마음이 드나요?

시편 9편

22.11.02(수)

11절)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가 행한 일을 온 세상에 선포하라.
간증: 하나님이 하신 일
기도회와 새롭게 하소서와 같은 유투브 채널에 하나님을 간증하는 영상이 많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말하는 것.
간증은 귀하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나타낸다.
연애로 비유하면, 연애편지 같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마음을 전하는 그런 것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서 많은 연애편지가 쌓일 것이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할수록 더 많은 이야기 거리가 만들어 질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관여한 간증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서 풍성해지고, 다양한 스토리가 쌓여갈 것이다.
만약 사랑하는 연인과의 스토리가 더 이상 없는가? 연애편지를 더 이상 쓰지 않는가?
연인과 헤어짐에 앞서서 이야기할 것이 없는 현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삶에서 간증이 없다면, 지금까지 간증할 만한 이야기가 없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작하지도 못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관계가 깊어질 때 간증이 쌓인다.
간증이 쌓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많이 하는 것이 온세상에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같은 교회 형제 자매와 대화를 하다보면, 답답함을 느낄때가 있다.
소심한 성격인 이유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을 정말로 만났는가? 를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다.
하나님을 단순히 나의 삶을 풍요롭게만 해줘야 하는 그런 존재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났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옷을 찢고 춤추는 다윗처럼 말이다.
물론, 그 열정이 식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헤어질 것인가? 하나님과? NO NO
열정이 식었다면, 다시 한번 하나님께로 돌아가야함을 인지하면 된다. 나의 상황과 상태를 인지하고, 회개하면 된다.
간증하자. 여호와 하나님을.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 나를 구원해주고 살리신 그분을
함께 기도
하나님을 간증할 수 있는 스토리가 풍성하고, 넘치는 하루하루 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나의 최신 간증은?
맛을 잃은 소금 ~ 길 가운데 버려져 밟히나니 ~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슨 소용 있으리요 ~

시편 8편

22.11.01(화)

4절) 사람이 무엇인데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인데 주께서 그를 돌보십니까?
믿음의 세습
시편 8편 찬양을 함께 들으며, 묵상을 하였다.
그 중 4절의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리가 무엇이길래? 나의 자녀가 무엇이길래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낌없이 주시는 것일까?
모든 사람을 자녀 삼고, 여호와 주 이름을 찬양만 하면, 주님의 모든 것을 가지게 해주신 것일까?
우리는 누구일까? 하나님의 자녀. 손녀, 손주이다. 가족이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녀에게는 뭐든 좋은 것만 주시는 것을 약속하신다.
이런 하나님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알고, 믿고,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이 든다.
나의 자녀도 돌봐 주시는 주님의 가사처럼 엄마, 아빠의 믿음 자녀에게로 흘러들어 갔으면 좋겠다.
세상 친구가 나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자녀도 종교의 자유가 있는 데 왜 억지로 기독교를 믿게 하냐이다. 여기에 대한 답변을 이렇게 하고 싶다.
세상 제일 좋은 싶은 것을 주고 싶은 것이 아버지 마음이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하나님의 믿음을 주는 것이 나의 소명이요.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나의 자녀 하나가 인생의 방황을 맛 보지 않고, 믿음으로 주님 안에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부모로써 믿음이 자녀에게 세속되어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그 아름다운 이름이 온 땅에 퍼져나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모든 아이와 자녀들이 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함께 기도
아름다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온 땅에 알리는 전도자로 성장시켜 주세요.
오늘의 질문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편 7편

22.10.31(월)

9절)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온고지신
본문은 악인을 벌하시고, 의인을 세우며, 만민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10월 29일 이태원에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150명이 사망하고, 80명이 다친 큰 인재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20, 30대 청년들이 희생 되었다는 것이다.
희생자 가족들의 탄식과 정신차리라고 울부짖으며 CPR을 하고 있는 시민들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본문의 악인을 처벌하는 내용이 가슴 떨리게 무섭게 느껴졌다. 악인들로 인한 재앙이라는 것이 뼈저리게 무섭게 다가온다.
누가 악인이기에 이런 재앙이 만들어 진 것일까?
인파의 관리를 소홀히 한 행정부 공무원?
술과 클럽 문화에 취해서 뒤에서 장난식으로 “밀어”라고 파도타기를 외치던 청년들?
압사사고를 당한 피해 당사자?
방관하고 있던 시민들?
모두가 악인이고, 죄인이라고 느껴졌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죄의 삭은 사망이기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예수님이 악의 고리를 끊어 내셨다. 그리고 의인이 되셔서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해 주셨다. 벌하기를 더디하게 만들어 주셨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가 악인이다. 그래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께로 회심해야 한다.
오늘 하루를 예수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 내야 한다.
오늘의 재앙을 기억하고, 잘못한 점들을 고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온고지신의 자세로 잘못된 것들 고쳐나가고, 죄악의 부분들을 뜯어져 나가야 한다.
온고지신의 뜻은 옛것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20대 초반, 예수님을 믿기 전 둔산동 술집들을 방황하면서, 여자와 술게임을 할려고 했던 때가 있었다. 그 때의 부끄러움을 기억하면서, 절대로 술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술 문화, 클럽 문화를 쫓아 허송세월하던 때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꼐로 전진하기 위해서 새로운 거룩한 습관을 받아들일려고 노력한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하나(애기) 앞에서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 오늘도 옛것은 떠나보내고, 새로운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가는 오늘이다.
함꼐하는 기도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 부어주세요. 나의 시간과 삶을 허송세월했던 지난 과거를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 거룩한 신앙의 습관을 만들어가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내게 있는 좋은 습관 혹은 만들어 가고 싶은 좋은 습관은 무엇인가요?

시편 6편

22.10.29(토)

10절)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부끄러움을 아는 은혜
흔히 철이 없다고 한다. 철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도 철이 없을 때가 있었다. 20살이 되고, 자유와 신체적 정욕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제일 쉽게 접하던 것이 술이었다.
가벼운 맥주부터 마시기 시작했고, 후에는 폭탄주를 즐겼다.
한 달을 매일매일 술을 먹을 때가 있었다. 그 결과, 길바닥에서 잤고, 지갑과 휴대폰을 모두 잃어 버렸다. ( 20살에 지갑을 6번 잃어버림 ㅜㅜ)
그렇게 한 달을 술을 먹다 보니, 술을 안 마실 때도 술을 마신 것처럼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더 부끄러운 것은 술자리에서 자랑거리로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예수님 믿기 전에 부끄러운 짓을 참 많이 행했다. 그게 부끄러운지도 모르고서…
예수님을 알게 되고, 구원을 받고, 너무 부끄러운 일임을 깨달았다.
예수님을 알지 못했다면,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고, 부끄러운 행동을 반복했을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서 180도 인생이 바뀐것이다.
죄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알게 된다면, 이제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술에 절었던 그 시절을 반면교사 삼아서, 앞으로 주님의 일에 더 노력할 것이다.
부끄러움을 그만 멈추고, 자랑스러운 일에 매진할 것이다.
오늘 함께 메이커라는 초등생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봉사에 참여 하게 된다.
그 봉사가 선교라는 비전을 이루는 작은 스텝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부끄러운 일에 허비하지 말고, 자랑스러운 일에 투자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하루 투게더 기도
부끄러움을 깨닫게 해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나의 시간을 아껴서 주님의 일에 힘쓰는 오늘 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오늘 겪은 부끄러운 일이 무엇인가요?

시편 5편

22.10.28(금)

3절)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아침소리
본문은 다윗의 시이다. 노래이다.
다윗은 위기의 순간마다 주님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기도하였다.
문제에 봉착했을 때, 내 힘으로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주님에 부르짖었다.
3절에 아침이라는 시간에 오늘은 마음이 간다.
아침이라는 시간을 말한 이유가 있을까 묵상해본다.
아침은 하루의 시작이지만, 다윗의 상황을 미루어 볼 때, 눈을 뜨면, 개운함과 즐거움 보다는 당장의 문제 때문에 밤 중에 내려 놓았던 근심과 걱정이 한꺼번에 몰려 왔을것이다.
지금 내 목이 붙어 있는지 부터 확인했을 것이라 상상해본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을 것이다. 아침에 하나님이 나의 기도소리를 듣는 것으로 믿고, 부르짖었을 것이다.
기도할 때 필요한 마음가짐을 느낀다. 하나님을 믿는 마음, 나의 기도소리가 아침에 외치는 소리가 하나님께 닿을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기도하는 순간에도 걱정과 근심에 가득차서 기도를 못한 적이 있는가?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 믿어야 한다. 나의 문제를 전적으로 주님께 맡겨야 한다.
다니엘 기도회가 다음주에 있는데, 사실은 큰 기대와 감흥이 없다.
오늘 묵상을 통해서 기도회에 참석해서 큰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나의 문제를 내려놓고 기도할 수 있는 기도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을 찾는 아침소리가 가득한 하루로 채워주세요.
오늘의 질문
아침에 제일 먼저 눈 뜨고,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시편 4편

22.10.27(목)

5절)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간첩신고는 111, 대적 신고는 9191
대적은 어떤 사람일까?
나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사람
나의 가치관을 흔들어 놓는 사람
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사람
대적은 나에게 전혀 이로운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곤경에 빠트리기를 즐거워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런 대적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나라의 안보를 위협하는 간첩 신고는 111에 하는 것처럼 우리는 대적을 하나님께 신고해야 한다.
직접 간첩을 때려 잡아도 되지만,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다.
간첩은 나를 대신해서 때려 잡아 줄 국가 기관에 신고하면 된다.
대적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직접 대적을 상대하려면, 역부족하여 내가 쓰러지겠지만,
하나님께 신고하면 하나님이 대신해서 옥에 가두어 주신다.
나에게서부터 대적을 떨어지게 해주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될 것은 무엇일까?
대적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상대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이 해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면 된다. 단지 그 뿐이다. 의지하면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본기이다.
하지만, 습관화가 되어 있지 않거나, 평소에 충분한 연습이 되어 있지 않으면, 대적이 등장했을 때 나의 힘으로 먼저 감당하고자 할 가능성이 높다.
습관화와 충분한 연습을 위해서는 먼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해야 한다. 나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해야만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다.
이전의 에스라 말씀처럼 회개가 신앙 기본기의 첫 시작이다.
내가 지금도 힘들고, 자꾸만 넘어지는가? 회개해라. 그리고 기도해라. 하나님이 해주신다는 것을 뼈속까지 믿으라.
오늘의 기도
주님의 힘에 의지하는 마음 허락해 주세요.
오늘의 질문
나의 성향(성격)은? 나의 성향(성격)과 맞지 않는 사람은?

시편 3편

22.10.26(수)

5절) 내가 잘 자고 다시 깨었으니 밤새도록 여호와께서 지켜 주셨음이라.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주위에 대적이 둘러싸고, 내가 당장 죽을 위험에 있는 데,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도 꿀잠을 자고 일어날 수 있을까?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음은 하나님의 은혜다.
어떠한 상황에도 꿀잠을 잘 수 있도록 보호해주시는 분이다.
우리는 지금 처한 상황을 보면, 끊임없는 걱정의 연속이다. 우울해진다.
가진 것은 없고, 삶은 여유보다는 자꾸만 힘들게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공유하면, 상황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임하심이 느껴진다. 지금 내가 겪는 것은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임이 분명함을 인지한다.
현실을 보라는 말을 나는 싫어 한다.
이상주의자인 성향도 있겠지만, 현실을 보라는 말에는 하나님이 빠져있다. 정확하게는 물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물질이 많다고 평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여유가 있다고 평안하지 않다. 많이 가지면 가질 수록 지키고자 하는 것이 많아지고, 욕심이 생기기 때문에, 삶은 여유가 있다고 해도, 마음의 여유를 동시에 가지기 어렵다.
그래서, 현실을 보라는 말을 나는 싫어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임재하시는 현실이다.
물질의 상황이든, 관계적 상황이든 나는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언제나 노력할 것이기에 … 나의 현실은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곳이다.
주위에 평안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예수님을 알려주는 하루하루가 되자.
오늘의 기도
진정한 평안을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의 질문
내가 좋아하는 시간 보내기 방법은?

시편 2편

22.10.25(화)

7절)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나님의 선 긋기
두 점을 이으면 선이 된다. 시작점과 끝점을 이으면 된다.
선은 방향성이 있다. 시작에서 끝점으로 이어지는 방향으로 긋게 된다.
선은 길이가 있다. 시작점은 바꿀 수 없지만, 끝점을 시작점으로부터 멀리 이동하면, 길이가 길어진다.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시작점이 된다. 정체성이 우리의 시작이 된다.
어디서 부터 왔고,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알아야 스타트를 끊을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고, 4인 가족의 구성원 같은 정체성 말이다.
목표가 그 끝점이 된다. 목표가 있으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긴 목표, 즉 비전을 정하면, 선이 꼬이지 않고, 길게 이어질 수 있다.
정체성과 목표가 정해지면, 방향이 정해진다. 길이가 정해진다.
말씀은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해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은 확정 되었다.
만약, 정체성이 흔들리거나,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교회를 잠시 떠나 있다면, 미안한 이야기 이지만,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는 무엇을 하면 될까? 목표와 비전을 지정하면 된다. 멀면 멀수록 길이가 길면 길수록 좋다.
묵상대학이 그 비전과 목표의 점이다.
묵상대학을 부흥시켜 많은 청년들이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그 방향성을 향해서 열심히 달려가는 5년, 만으로 4년이 되보자! 아자아자!
오늘의 기도
주님의 아들인 것이 감사합니다. 인생의 방향을 정하여서 열심히 달려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질문
나는 누구인가요? (어떤 답변이든 상관 x )

시편 1편

22.10.24(월)

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이 있는 사람
주일 설교 때 임성도 담임목사님이 말씀하신 말이 기억에 남는다.
(말씀의 요지는 기도하는 자의 태도와 모습에 대한 것이었지만…)
한국인의 민족성에 토속신앙과 불교신앙의 뿌리 깊은 비나이다 신앙이 있습니다. 그런 관습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남아있습니다. 기도할 때 비나이다 같은 마음으로 때때로 기도합니다.
나에게도 비나이다의 관습이 남아 있음을 깨달았다. 본문의 복 있는 사람을 어떻게 상상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이제까지 복이 있는 사람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하고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Before 福(복)이 있는 자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람
건강한 사람
외모가 수려한 사람
가정이 행복한 사람
재능이 뛰어난 사람
After 福(복)이 있는 자
예수님의 가치를 따르는 자
삶의 기준이 예수님인 자
악인의 유혹에도 No라고 할 수 있는 자(Because of Jesus)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내가 생각 했던 복이 있는 자이다. 세상의 모든 행복을 가진 사람이 복이 있는 자라고 여겼음을 고백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福(복)이 있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악인과 구별되는 사람
예수님이 기준으로 유혹에 넘어지지 않는 사람
세상의 가치보다 예수님의 가치를 더 중요시 여기는 사람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본문의 말씀처럼 악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일까 구체적인 예시를 생각해 보았다.
case1) 직장에서 민폐를 끼치는 직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모두가 욕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함꼐 모여서 그 사람을 욕합니다. 나에게도 함께 욕하기를 원하는 상황입니다.
사회적 관계 때문에 욕을 하지 않으면 곤혹스러운 상황입니다.
case2) 회식에 갔습니다. 유흥을 즐기자고 권합니다. 계속해서 거절하지만, 더이상은 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악인은 자신과 같이 악인임을 권하고, 원하고, 유혹합니다.
예수님의 가치관이 중심에 선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다.
case1)과 case2)의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가치가 기준이라면, 예수 믿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복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믿고, 삶에서 실천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오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실천했는가?
오늘 나는 복이 있는 사람이었나?
오늘 하루 나의 능력만을 믿고 살았나?
복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임을 분명히 하자.
오늘의 기도
복 있는 자로 살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나에게 가장 큰 행복, 복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