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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Q.T. (22.05.11 ~ 22.06.01)

22.05.11 ~ 22.06.01
목차

로마서 16장

22.06.01(수)

19절)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 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 하기를 원하노라
한 사람의 영향
바울의 순종으로 그의 제자와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열매를 맺었을 것이다. 열매 맺는 소식이 들리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없을 것이다.
사람의 행동에는 관성이 존재한다. 습관이라고도 말한다. 오늘의 행동 패턴이 내일에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서, 오늘 순종하지 않으면 내일도 순종하지 못한다. 오늘 순종해야 내일도 가능하다.
1일 1장 큐티를 하면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느낀다. 조그마한 노력이 필요한데, 매일매일 그 노력을 끄집어 내는 게 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말씀을 읽고 순종하기 위해서 시작한 릴레이 큐티이기에 꾸준히 수행하였다. 이러한 작은 변화가 삶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항상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었고, 기도할 수 있었다. 1장의 큐티로 인해 하루가 풍성해지고,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태어날 하루를 위해서 예비하는 이 마음은 아마도 하나님의 마음, 바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새 생명으로 탄생될 사람들을 기다리는 간절한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기였다.
나의 신앙이 성장하여서 곧 태어날 하루(태명)와 우리 가정 우리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자녀로 다시 한번 전진하자!!
(작은 노력을 끄집어 내는 훈련을 지금부터 꾸준히 실천하자. )
(30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순종의 길을 가자!)

로마서 15장

22.05.31 (화)

5절)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하나가 되려면, 예수님을 본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공동체의 원리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성도끼리 뜻이 다르고 다툼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사리사욕이 첨가된 일일 것입니다.
교회에서 행사를 진행할 때, 프로 불만러는 항상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거나 자신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을 때 일이 틀어지기를 바랍니다.
말씀에서는 그런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에게 똑같이 한 마음과 한 입이 되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예수님을 믿는 수 밖에 방도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현재, 장년부로 올라가면서, 장년부 목장 모임과 남선교회 활동만 했었습니다. 그리고 각자 가정이 있고, 바쁘다 보니 만남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자연스럽게 장년부 형제(형님)들과는 인사만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장년부 사람들과의 관계가 끈끈한 동아줄 보다는 바람에 끊어지는 실오라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로마서 15장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장년부에서도 어떤 것을 나에게 바라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하셨습니다.
서로 서로 어른이라는 이유로 말씀을 공유하고, 예수님을 믿는 본질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말씀으로 모인 공동체이기에 말씀을 나눌 수 있는 목장과 남선교회로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실천]
목장모임을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조금 더 말씀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 챙겨가야겠습니다.

로마서 14장

22.05.30(월)

23절)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정죄하는 마음은 죄로 부터 비롯된 것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남을 정죄하는 일이 많다. 나만의 기준이 세워지고, 그 기준에 만족하지 못한 타인을 보면 이건 이래야지 저건 저래야지 하면서, 비판을 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마다 시기와 하나님의 때가 있고, 우리는 그 시기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다리고 인내하고 기도해줄 뿐이다.
말씀에서도 우리의 정죄된 마음은 믿음이 아닌, 개인의 욕심이나 만족에서 나온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일까? 8절에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믿음이라고 보여진다.
다시말해 23절은 주님을 위해서 살지 아니한 삶은 믿음에서 나온 삶이 아니고, 죄로 이어진다.
즉,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살기위해서 몸부림 쳐야 한다.
몸에 이로운 것은 쓴 법이다.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은 힘든 일이다. 어떤 삶을 원하는지 기도로 물어보고, 말씀으로 응답받자.
남을 정죄하는 마음이 들때면, 회개하고, 인내와 기도로 악한 마음을 내려놓자. 공동체를 위해서 항상 기도하자.

로마서 13장

22.05.27(금)

10절)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의 두가지 분류
복음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사랑이다.
사랑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사랑했기 때문에 죽으셨다.
바로 ‘나’ 를 사랑했기에 오셨다.
사랑은 개인적인 사랑과 대의적인 사랑으로 나누고 싶다.
개인적인 사랑은 하나님과 나와의 사랑이다. 내가 부모님을 사랑한다. 내가 아내를 사랑한다.
아내도 나를 사랑한다. 부모님도 나를 사랑한다.
사람은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존재이다. 그래서 양방향의 사랑이 중요하다.
이 둘 중 하나의 관계라도 어긋 난다면, 삶이 힘들어지고 인생의 방향도 틀어진다.
감사한 점은 다행히 나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예수님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부모님과 형제를 사랑한다.
대의적인 사랑은 민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부분이다.
최근에 느끼는 점은 대의적인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적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웃간에 인사, 정을 나누기 보다는 저 사람이 나를 해코지 하지는 않을까 의심부터 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국민의 기부 문화에 대한 통계 자료에서도 KOREA가 당당히 꼴찌를 하고 있다.
세계가 식량난, 전쟁을 겪으면서 국경의 문을 닫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서, 선교의 문이 닫혔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분명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끊임 없이 일어나고 있다.
개인적인 사랑과 대의적인 사랑, 모두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자.
부모님께 문안인사부터 드리고, 이웃에게 김치라도 나누어 주어야 겠다.
사랑의 기준
자율주행 기술이 증가하면서, 이제는 알고리즘이 차의 실시간 상황을 판단하여서 차를 주행한다.
여기서,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0.001% 라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알고리즘은 판단을 내려야한다.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상황을 제시해 준다. 자동차사고를 내기 직전에 왼쪽으로 틀면 10명을 사망시키고, 오른쪽으로 틀면 100명을 사망시킨다. 직진하면, 운전자가 죽는다.
알고리즘에 공리주의를 적용하면, 운전자를 사망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아무도 그 자동차를 타지 않을 것이지만…)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알고리즘에는 공리주의와 같이 선택이 강요되는 상황에서 필요한 사상들이 적용될 것이다.
여기서, 사랑을 적용 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사랑의 기준은 어떻게 될까 고민해보자.

로마서 12장

22.05.26(목)

9절)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사랑은 명확하다.
살이 차오른다.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작심삼일로 실패하고 오늘도 치킨을 뜯는다.
살이 찌고, 살이 빠지는 과정은 정말 거짓이 없다. 오차도 없다. 살이 찌는 것은 섭취량에 비례하고, 운동량에 반비례한다.
내가 세상을 사랑하고, 식욕을 즐겨서 100kg 까지 쪗다. 정확하다. 요세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니 3kg 이 빠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사랑도 이처럼 거짓이 없다. 정확하시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것이 있다면, 삶이 그 사랑하는 것을 쫓아서 움직일 것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악이다.
말씀을 말한다. 악을 미워하라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라고…
로마서 12장에는 또 자신을 지혜롭게 여김을 꾸짖는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나무란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이웃과 다른사람을 사랑할 줄 모른다. 하나님을 사랑할 줄 모른다. 겸손은 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속성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야지만, 진정으로 겸손할줄 알게 되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로 생각해보자.
90년대생은 치열한 경쟁사회를 보내왔다. 저 사람보다 내가 점수가 잘나와야 좋은 대학도 가고 인생도 필 것이라 생각했다. 저 사람보다 잘 살면, 주목 받고 부러움을 받아서 내가 뭐라도 된 것 마냥 신이 난다.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겼다. 남들은 무식하고 상식이 안통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깊은 속마음을 보면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생각들이었다.
나를 더 사랑했음에 회개하고, 말씀과 하나님의 음성을 더욱 사랑하자. 하나님을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자.

로마서 11장

22.05.25(수)

7절)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구원은 택함을 받는 것 입니다.
나는 내가 믿고, 내가 교회 다니고, 내가 사역을 한다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서 하고 있었다.
행위의 주체는 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되어졌다.
하지만, 말씀은 분명히 한다.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은혜을 받은 것도 모두 택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분명히 한다.
내가 믿는 것도, 교회 다니는 것도, 사역을 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궁휼함으로부터 할 수 있게끔 허락 받은 것이다.
감사하다. 우둔한 자처럼 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려고 하고, 동역자들과 함께 신앙의 일침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세상에서 가진 것 없고, 능력이 없는 것 처럼 보여도 나에게는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허락된 사람임을 잊지 말자.
오늘 하루도 자신감 있고, 힘찬 하루로 살아내자!
다짐 : 하루의 아침을 Q.T.로 시작하니까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남은 로마서 말씀을 아침 시간에 드려야 겠습니다.

로마서 10장

22.05.24(화)

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읽어야 하는 이유
사람은 보고, 듣는 것에 큰 영향을 받는다.
하루하루 어떤 말을 듣고, 어떤 것을 보았는 지에 따라서 몸 상태와 마음 밭이 시시로 변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무엇을 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지 보면 그 사람의 믿음 상태를 알 수 있다.
나는 하루의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나?
: 23 ~ 7 유튭() : 7 ~ 8 출퇴근 : 8 ~ 9, 18 ~ 19 : 9 ~ 18 저녁 식사 및 마무리 : 19 ~ 21 유툽() : 21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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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4시간정도를 유툽 시청에 시간을 쓰고 있었다…
말씀과 기도 시간은 어디갔을까…
이럴수가 보고도 듣지를 않는 사람은 나였다…
믿음이 흔들리는 이유와 신앙이 지쳐가는 이유를 알았다. 말씀을 듣고 있지 않았다.
말씀따로 행동따로가 아닌,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하루에 지키기 위해 고군 분투 해보자.
다짐 : 아침에 눈뜨자 마자, 세수하고 말씀을 읽자!!

로마서 9장

22.05.23(월)

18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전진하는 믿음
마가복음 10장으로 임성도 담임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적사역이 담겨져 있다.
복음의 원리를 설명해 주셨다.
1) 예수님을 구주(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2) 장애물이 있어도 주님 앞으로 전진하는 믿음
3) 우리 주님의 궁휼을 구하는 믿음
로마서의 내용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을 자녀를 궁휼히 여기신다. 불쌍히 여기신다.
하고자 하는 자를 완악하게(고집스럽고 모질다) 하신다.
인생을 살다보면, 우울한 일들이 많다.
돈의 문제는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크다…
그래도 나는 오늘을 살아 낼 수 있다. 예수님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돈을 넘어서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주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신다. 기도하면서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칠 수 있다.
그럼에도 복음! 복음! 복음! 힘든 나날들이지만, 한걸음씩 나아가자! 하루를 아끼자!
<기도>
1.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자
2.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자
3.
삶의 시선을 하나님께 드리자
(온라인이므로 구체적인 것 내용은 생략 ㅎㅎ)

로마서 8장

22.05.20(금)

24절)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보이지 않는 소망을 믿는 인내
믿음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는 일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점기가 40년이 넘어가면서, 조선사람에게는 광복이 온다는 소망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갔다. 오히려 억압받는 삶이 익숙해지고,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우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이들은 어렸을 적 식민교육을 통해서 자신을 일본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심지어, 광복 당일날 교황의 무조건적 항복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지식인들은 태평성대를 이룰려면, 일본에 붙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문을 받던 독립운동가들도 변절자로 돌아섰다. 광복 직전에 변절하여 밀정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소망을 잃어 버렸다.(해가 뜨기 전에 가장 어두운 법…)
소망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볼 수 없다. 인내하지 못한다면, 결실을 맺을 수 없다.
현재, 나의 작은 행동, 복음을 이야기하는 행동, 사람들을 대하는 행동들이 별거 아닐 지 몰라도 소망의 눈으로 참고 인내하여서 복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자.
나의 작은 행동, 언행이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1.
짜증나게 하는 직원에게 친절하게 대하기
2.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더라도, 대화에 참여하기
3.
복음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로마서 7장

22.05.19(목)

2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육은 죄악을 저지릅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율법을 따른다고 해도, 한편으로는 죄를 범하는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기본 설정이 범죄하는 성향으로 세팅이 되어 있습니다. 나의 죄를 회개하고,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사실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속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육은 죄를 짓더라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죄의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히 집고 넘어 갈 수 있는 로마서이다.
이거는 선한 거 아닌가요? 이정도면 되지 않나여? 라고 생각이 들면, 로마서가 아니! 너는 죄인인데, 너 죄밖에 저지른게 없는데?? 아침에 눈 뜨고 밥먹고 배변할 때 빼고 니 생각 니 육체는 범죄했는데?
어쩌라는 말이지? 라고 생각이 들면 바로 답을 알려준다. 로마서는 너의 의로는 선을 행할 수 없어… 그러니까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자. 알겠지? 죄에 문제에 계속 넘어지지만,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믿는 것 밖에는 답이 없어!
예, 주님. 나의 생각, 나의 실천 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
< 중보기도 >
하루(태명) 의 건강과 소진산모의 건강을 지켜주세요.
친척, 사촌. 믿음을 전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항상 중보기도를 하게 해주세요.

로마서 6장

22.05.18(수)

15절)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찬양 : 은혜 아래 있네 - 아이자야 씩스티원
은혜 아래 있네
그리스도를 믿음 ⇒ 은혜 아래에 있음 ⇒ 죄를 짓지 않음 대조 ) 죄를 지음 ⇒ 법 아래에 있음 ⇒ 세상을 믿음 대조 역 ) 세상을 믿음 ⇒ 법 아래에 있음 ⇒ 죄를 지음 역) 죄를 짓지 않음 ⇒ 은혜 아래에 있음 ⇒ 세상을 믿지 않음(그리스도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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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구절을 이리 저리 생각해 보았다.
6장은 은혜와 죄를 반복적으로 설명한다. 은혜와 죄를 이리저리 비교해 가면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한다.
결론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의 삶처럼 살게 된다는 말인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자꾸만 의구심이 들고 믿음에 대해서 확신이 없다면, 온전히 믿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즉, 80% 믿음, 90% 믿음은 없다. 0과 1처럼 믿느냐, 안 믿느냐 만이 있다.
정전도사님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카페의 바리스타를 만나는 비유를 들곤 한다. 커피를 시키기 위해서는 바리스타에게 주문한다. 바리스타를 만난것과 예수님을 만났것은 같다는 말이다. 즉, 아리송할 수가 없는 문제이다.
이제는 은혜의 아래서 주의 종처럼 살아가는 문제만이 남겨있다. 나의 삶을 은혜로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말씀과 기도에 부지런하는 것, 부모를 공경하는 것, 이웃을 돌보는 것, 직장과 함께 성장하는 것.
위의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나의 시간과 욕심을 희생해야 한다.
게임 놓아주자... 유투브 놓아주자... (8시간 중독자...)

로마서 5장

22.05.17(화)

19절)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1 : M 관계 - 순종, 범죄
순종과 범죄는 대척점에 있다. 순종은 의로움을 낳고, 범죄는 사망을 낳는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전달된다는 점이다.
나에게는 어떻게 적용될까?
가정에서 순종하는 마음은 아내에게 전달될 것이다. 범죄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가정이 현재 평온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내가 범죄했기 때문일 것이다.
화평하다면, 내가 순종했기 때문일 것이다.
순종의 영역은 어디까지이어야 할까?
설거지 하는것
집안 청소하는것
경제적인 벌이를 하는것
육아를 함께 하는것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것
이웃을 섬기는 것
먹는 거 욕심내지 않는 것
게임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나의 생각을 벗어난 범주에서의 순종은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해야겠다...
위의 순종을 하다보면, 고난이 따른다. 인내하여서 소망의 열매를 맛보자 ㅋㅋ

로마서 4장

22.05.16(월)

25절)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나 때문입니다.
죽으심 ⇒ 나의 죄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심
부활 ⇒ 나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심
복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나때문입니다.
복음은 유앙겔리온이라고 한다. 이 뜻은 복된 소식입니다.
담임목사님 설교에서 유앙겔리온이라는 말이 어떤 느낌을 전해주셨습니다.
옛날 로마 시대, 전쟁 때문에 남자들이 징집되었습니다. 각 가정의 아버지, 남편, 아들들이 군대로 끌려갔습니다.
남아있는 아내, 딸, 어머니들은 그렇게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사여부를 알 수 없어서 하루하루 농사를 지으면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 멀리서 깃발을 꽂고 말을 탄 군인이 마을로 오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었습니다.
그 전령은 말을 타고 달려오면서, 유앙겔리온~~ 소리칩니다. 이 소리는 여인들에게는 아들, 남편이 살아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말은 들은 여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감격과 눈물과 안도와 감사함이 넘치면서 하던 일들을 모두 다 놓아두고 뛰어서 맞이하러 갔을 것입니다.
복된 소식 복음은 이러한 것입니다. 눈물이 터져나오고, 감격이 되고, 내가 짊어지던 무거운 짐을 모두 벗어 던지고, 한 달음에 주님 곁으로 달려나오는 것입니다.
복음은 나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나 때문입니다. 내가 그만큼 귀한 존재이고, 의로움을 받을 만한 존재입니다. 죄악 가득한 나는 예수님 때문에 의로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 들이십시오! 유앙겔리온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2.05.13(금)

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오늘의 찬양 :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예수님 값으로 산 “나” 입니다.
전 직장에서는 싫어도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예”라고 해서 남들과 다른 것이 두려워서 “아니오”라고 답을 못 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유흥업소를 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 곳은 갈곳이 아닙니다. 라고 말 못하고, 그냥 같이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코로나와 이직을 통해서 보호하셨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세상과 다름을 무서워 했고, 직급과 사회에 굴복하는 습관 때문에 그랬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값을 지불해서 얻은 예수님의 사람입니다. 의롭다 여김을 받은 어여쁜 그리스도의 자녀입니다.
예수님이 배후에 있기 때문에, 이제는 바른 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복음적이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니오 라고 당당히 말하여야 겠습니다.
직장에서 선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면, 선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삶의 기준을 세워서 선택의 순간에 예수님이 의롭다 하는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1.
복음적인 것을 선택!
2.
이기적 사탕발림이 아닌, 이타적 쓴소리! (꼰대인가?)
3.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로마서 2장

22.05.12(목)

29절)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하나의 진리
그 옛날에도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질문과 술은 마셔도 되나요 담배를 피면 안되나요 등등의 질문을 많이 했던거 같다.
사도 바울은 대답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에 대한 비유를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신체적 증거가 아니라 마음의 증거(믿음)가 진짜이고, 이는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마치 포경수술을 직접 할 수는 없고, 의사가 대신 해줘야 하는 것처럼...
그렇다. 술을 마시고, 자시고, 담배를 피고 안피고, 도덕적으로 살고 안살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더러운 마음을 정결하게 할 수 있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 “교회 다닌다고 술은 마시면 안되나? 성경에 쓰여진 것도 없잖아 마시지 말라고” 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그렇지. 성경에는 안써서 있지. 그러면 마셔도 되나??” 이러고 말았다.
이제는 로마서의 말씀대로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 니가 자랑하고 싶은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챃아. 하나도 부럽지가 않아. 근데, 너가 교회 다닌다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술 마시고, 침 뱉고, 욕하고, 담배 뻐끔뻐끔 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니? 예수님 믿더니... 도너츠를 만들 줄 알네!! 나도 예쑤님 믿어야지! 라고 하겠니? 아니면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 악질이야 이기적인 사람이야 라고 하겠니? 그러면 답은 나와겠지? 그래 그래, 예수님을 전심으로 믿게되면 당연히 안하는 것들이야”
역으로 교회 다니면 술은 마시면 안되나요? 등과 같이 질문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정말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예수님)을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들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술을 계속 마시고, 담배를 계속 피우고, 음욕을 즐긴다면... 그건 아마도 그것들을 더 사랑하기 때문은 아닐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고, 복음을 마음에 새기는 것...
항상 떠올리자 예수님이라면?

로마서 1장

22.05.11(수)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제목 :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소제목 : 나의 삶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돈 벌고 살고 있다. 반복되는 삶이지만 일과 가정에 충실하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신앙은 언제 시작할까? 라는 물음이 생겼다.
그래서 지난 3년을 돌아보니 언젠가는 이라는 말로 말씀을 귀 기울이는 것을 그만두었다.
바쁜 삶이라는 이유로 더이상 신앙을 돌보지 않았다.
기도를 게을리 하고, 예배를 형식적으로만 드리는 시간을 보냈었다.
시대의 가치를 따라가고 있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이 되었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 사는 삶이 되어 버렸다.
성경은 일침을 가한다. 로마시대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죄악스러웠다.
하나님을 믿지만, 돈을 우상시 하였다. 하나님을 알지만, 세상의 가치를 더 우선 시 하였다.
재밌는 것이 너무 많다. 마블 히어로 영화는 눈과 귀를 사로 잡는다. 멀티버스라니...
하나님을 알지만, 아는 것에서 그쳤다. 하나님을 믿지만 믿는 다는 말에서 그쳤다.
나의 삶과 목적, 방향, 행동들을 분명히 할 때이다.
나의 삶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전할 것인가??
xxx는 지금, 당장 시작해라!
실천)
나는 가장이다.
먼저는, 우리 가족에게 정성과 온 마음을 쏟을 것이다.
아이에게는 신앙을 가르치고, 부모님께는 문안인사, 사랑한다는 말, 함께하는 시간들을 보낼 것이다.
아내에게는 매일 사랑한다는 말을 1번 이상 할것이다.
나는 개발자(직장인)이다.
(직장에서 직원들과 대화나누고 있으면, 특이한 성격의 사람들을 본다. 더 깊이 이야기 해보면, 가정의 상황이 좋지 못하는 걸을 느낀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을 많이 하지만, 쉽지 않다. 좀더 고민해 봐야 겠다.)
직장을 위해서 기도하자.
나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자.
편한길로는 가지 말자.
대충 대충하자는 말 금지
오늘의 찬양 : 이 시간 너의 맘속에 - 달빛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