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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전 후서 ( 22.08.15 ~ 22.08.24 )

목차

데살로니가 후서 3장

22.08.24

7절) 여러분은 우리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제멋대로 살지 않았으며
8절) 아무에게도 공밥을 얻어 먹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밤낮 수고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비전을 찾는 연습
코로나 시대 때 사회의 많은 부분들이 변화하였다.
국제적인 사건 사고도 많았다.
그 중 일하고 싶지 않은 청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통계를 보면, 사회 초년생이 처음 취업하고 1년 안에 그만두는 사람들의 비중이 60%정도이다.
그 중 6개월, 3개월 안에 그만 두는 사람들의 비중이 상당하다고 한다.
왜 이러한 현상이 있을까?
쉽게 포기하고, 일하지 않는 것일까?
두가지 관점이 있다. 개인의 문제로 보는 관점, 사회적 문제로 보는 관점이 있다.
사회적 문제는 물가 상승, 워라벨을 선호하는 성향, 불로소득과 근로소득의 격차의 상승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 것이다.
오늘 묵상은 사회적 문제보다는 개인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자.
그 이유는 나의 문제를 인지하고, 변화하고 실천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MZ세대는 고통의 역치가 낮다.
고난과 환난 보다는 비교적 평안한 환경에서 살아왔다. 단군이래 가장 잘 사는 때에 살고 있다. 고통이라는 자극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일희일비하는 성향이 있다.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 장점이지만, 작은 일에 큰 낙심도 한다.
Reset 시스템에 익숙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확신이 없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다면, 쉽게 포기하는 성향이 강하다. 인내하고, 꾸준히 하기 보다는 Reset을 눌러서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비전과 꿈을 꾸지 않는다.
많은 좌절과 현실에 타협하여서, 비전과 꿈을 고민하지 않는다. 돈이 되지 않는 것을 하려고 하면, 주위에서 비난과 걱정의 시선을 받는다.
통 속에 갇혀 뛰는 벼룩처럼 나의 한계를 단정 짖는다.
심지어는 비전이 있어본 적도 없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1.
함께하는 것
2.
배우고 따르는 것
3.
열심히 일하는 것
함께 한다면, 계획이 필요하다. 계획이 있다면, 그 계획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
함께 한다면, 혼자서만 뒤처질 수 없다. 군생활도 혼자하라고 하면 못한다. 전우가 있기에 가능하다.
배우고 따라야 한다. 프로 운동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독학으로는 안 된다. 멘토가 있고, 코치에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너지가 생겨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천해야 한다. 배운 것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 내 개인적인 마인드도 배워서 남주자! 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자신이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던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 처럼 나의 비전과 목표를 향해서 전진해야 한다. 습관을 만들고, 뜨거운 비전의 열정을 불태워야 한다.
실패하고 깨져도 비전을 계속해서 찾고 만드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의 비전과 목표를 향해 오늘도 주야로 열심히 달려간다.
퇴근 후 가정을 돌보고, 출근해서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꽁밥 NO! 밥 퍼주기 YES!
오늘의 기도
하루하루 지쳐가는 신앙이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나는 신앙을 갖게 해주세요. 가정에 평화와 평탄한 길을 주셔서 웃음이 넘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나의 열정을 불태웠던 경험이 있나요? (시간을 들이거나 돈을 들였던 경험)

데살로니가 후서 2장

22.08.23

14절)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는 일
2000년대 초와 2020년 이후 달라진 점을 생각해 보았다.
전문가의 말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듣지 않는다.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
정치를 표심으로만 하는 성향.
진실보다는 마녀사냥과 자극적인 거짓을 더 좋아하는 성향.
정보의 바다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극히 작은 정보만으로 자신만의 세계에서 사는 성향.
진리보다는 눈 앞의 쾌락에 빠져드는 성향.
이런 성향이 극단으로 치달은 것이 이단과 사이비라고 생각한다.
눈은 떠있지만, 눈먼 자들. 귀는 듣고 있지만, 듣지 못하는 자들이다.
진리의 말씀을 자신의 입맛대로만 먹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도구로만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이런한 유혹에 미혹하지 않는 방법은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가르침을 지키고 행하는 것이다.
지키고 행한 것을 다음세대로 전해야 한다.
오늘 새벽 꿈을 꾸었다.
통일교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집으로 몰려왔다.
그들은 모임과 예배를 드렸다.
나는 그들이 잘못되었고, 우리집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것을 직감했다.
가족들도 있었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점점 잘못된 길로 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통일교 사람들에게 화를 내었다.
성소(성진소진 하우스 or 하나님의 성소) 에서 그들을 내쫓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멸망하는 자들과 함께 있다보면, 나도 그들과 같이 된다. 다수가 움직이는 큰 흐름에 따라가는 무서움을 느꼈다.
복음의 허리띠를 꽉 쪼이자. 말씀으로 깨어있자!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는 일에 온 신경 쏟고 온 마음을 향해 있자!
P.S. 저녁에 하나가 자지러 지게 우는 바람에 큐티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말씀을 보는 마음을 다시 가져보자!
오늘의 기도
주님 오직 주님의 영광을 구하는 일에만 나의 마음과 시간과 행동을 쏟게 해주세요. 다른 의미 없는 일에 삶을 낭비하지 않게 해주세요. 복음을 다음세대에 전할 수 있는 그릇이 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묵상 대학의 말씀 묵상 챌린지를 통해서 받은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데살로니가 후서 1장

22.08.22

10절)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재림을 믿는 믿음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바울의 편지는 데살로니가 후서까지 이어진다.
왜 2번의 편지까지 써야만 했을까?
믿음의 본이 되던 데살로니가 교회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데살로니가 전서 매 장마다 마지막 구절에는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재림에 대해서 적혀있었다.
바울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데살로니가 교회의 약점이 재림에 대한 잘못된 믿음관이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 바울은 감옥에서 고문을 받고 핍박을 받는 상황이었지만, 시간을 쪼개고, 정신을 집중해서 서신을 보내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회의주의적 사상이 퍼졌다.
“곧 재림하시는 데 열심히 살면 뭐해?
이 세상이 멸망하는 데, 죄를 안 짖고, 평안하게 살면 그만이지”
그런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바울은 본질과 핵심을 이야기 한다.
“주님 다시 오실 그 날에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선을 기뻐하고, 믿음 의 역사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그 날이 가까워 올수록 현실에서 더욱 뜨겁게 믿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똑같은 적용이 될 수 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거나, 사역을 열심히 해도 재림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마치 책을 출판하기 직전의 작가가 마침표를 찍지 않고, 책을 내려고 출판사를 찾아가는 것과 같다.
재림에 대한 믿음 없이는 언제든지 쓰러질 수 있는 뿌리가 얕은 나무와 같다. 비바람에 큰 몸통을 버티지 못하는 뿌리가 얕은 나무 말이다.
나에게도 질문을 던져 본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나? 나도 그 날이 가까워 올수록 더 열정적으로 믿음을 전하였나? 내가 한 행동과 들인 시간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에 가면, 사교 모임처럼 교인들을 만나고, 세상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전도 사역을 가자고 하면 귀찮아 했고, 직장에서도 세상과 타협을 하면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재림에 대한 믿음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다시 오실 때가지 찬양을 들으면서 오늘 큐티를 마무리 한다.
오늘의 기도
재림에 대한 믿음이 풍성해지는 나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날을 두려워하고, 그 날을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재림에 대한 믿음이 확고 하신가요? 그러한 근거는 무엇인가요?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2.08.19

8절)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정신 좀 차려!
우리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간다.
10대에는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20대에는 좋은 직장을 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30대에는 좋은 차와 좋은 집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40대에는 아직 겪어보지 못해서 모르겠다.
대한민국 보통의 사람들이 사는 삶이고 사회적 분위기이다.
이 과정에서 목표가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좌절감을 느끼고, 주변에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우울증이 찾아오고,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다.
또, 다른 목표를 찾고자 하는 의지 조차 잃어버린다.
(목표를 잃어버리거나, 단순히 돈이 목표인 청년들을 종종 본다.)
우울감에 빠지고, 정체성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중요한 것을 간과한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헌법과 형법과 민법에서 다스림을 받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는다.
어느 것이 우선일까? 당연히 말씀이 우선이다. 법은 사람이 만든 시스템이고,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이다.
비교 불가하다.
그런데, 우리는 정신을 못차리고, 사회가 만든 시스템 안에서 말씀을 잊어버린다. 소속을 잊어버린다.
30살이 된 지금 이전의 목표들이 정말 허무하다는 것을 느낀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껴던 가치관들이 주님의 비전과 목표와는 다른 방향이었다.
그 시간들은 낭비되는 시간들이었다.
내가 목표로 삼은 것들이 실제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들이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다음세대에 복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정신을 차리고, 호심경과 투구를 쓰라고 한다.
(*호심경 : 갑옷의 가슴 쪽에 호신용으로 붙이던 구리 조각. )
호심경은 심장을 뚫을 수 있는 총알을 한 번 막아준다. 나의 생명과 삶이 믿음과 사랑 덕분에 살아난 것이다. 죄에 빠져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총알에서 내 심장을 지켜준 것이다.
x맨 영화를 보면, 찰스 자비에 교수는 상대방의 정신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막강한 능력이지만, 매그니토라는 악당은 그런 능력에서 벗어나는 투구가 있다. 그 투구를 쓰면, 자비에 교수의 정신 지배를 무능력 시킨다. 자기가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 움직인다.
이처럼, 우리 구원의 소망 투구를 쓰고 있을 때, 세상의 가치가 나의 정신을 집어 삼키는 것으로 부터 온전히 나를 지킬 수 있다. 세상의 정신 지배는 너무 막강해서, 투구 없이는 견딜 수 없고 그대로 집어 삼켜진다.
정신 차리자! 나는 주님의 편이다. 나의 소속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목숨을 지키자.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가슴에 달자.
정신을 지키자.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주어진 오늘을 열정적으로 살아내자.
오늘의 기도
주님. 세월을 아끼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오늘 주어진 하루를 주님이 주신 길을 걷고, 노력하고, 성장하는 하루로 살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정신 못 차리고 시간을 낭비한 경험이 있나요?

데살로니가 전서 4장

22.08.18

11절)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조용한 일꾼
회사 내에서 정치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과를 내야 승진도 하는데, 일은 하기 싫고,
이런 사람이 택한 회사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이러하다.
정치질을 하는 사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실력 부족
2.
열등감 덩어리
3.
욕심은 가득 but, 일하기 싫음( 손 안대고 코 풀기 원함 )
이런 사람들응 쭉정이 같은 존재이다.
조직을 좀 먹고, 무너뜨리는 썩은 대들보 같은 존재들이다.
교회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많은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오버워치 라인전처럼 라인에서 밀려나거나 사이가 안좋아지면, 사전 예고 없이 사역자를 내보내는 일도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이처럼 믿음 보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 무리 안에서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람들이 교회 내에서도 존재한다.
물론 이런 사람들도 교회에 와서 치유받고, 거듭나야 한다.
다만,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에 항상 경계를 해야 한다.
좋은 일꾼, 참된 봉사자는 묵묵히 자신의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또한, 솔선수범하여서 사역을 해내는 사람이다.
주님의 사역은 인내하고, 묵묵히 한 걸음 나가야 하는 일이다. 분란을 만들고,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 없다. 주님과 소통하면 된다.
우리 교회에도 묵묵히 자신의 봉사자리에서 일하시는 권사님, 장로님들이 계신다. 본 받고 그 길을 따라야 겠다.
오늘의 기도
묵묵한 일꾼, 조용한 봉사자가 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당신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조용한 일꾼인가요?

데살로니가 전서 3장

22.08.17

12절)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듯 여러분도 더욱더 넘치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를 주님께 기도합니다.
기버 앤 러버
기버, 테이커, 매쳐라는 책에서는 세상의 사람들을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기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은 사람
매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은혜갚은 제비 (복수로도 갚음)
기버와 있으면 기버속성을 지니고,
테이커와 함께 있으면 테이커속성을 가지게 됨.
테이커 : 무조건 뺏는 사람
사회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매쳐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조건 뻇는 사람이 잘 살 것 같지만, 무조건적으로 주는 사람이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기버는 다른 사람을 키우기 때문이다. 나 혼자서만 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버의 속성을 지녀야지만, 복음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문에서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사랑하는 사도 바울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사랑하라고 권면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기버라고 볼 수 있다.
사랑하게 되면, 조건 없이 무엇이든 주고 싶어진다.
사랑하게 되면, 무엇이든 지 이루어 주고 싶어진다.
사랑하게 되면, 계속 보고 싶어진다. 연락하고, 대화를 하게 된다.
예수님이 말한 이웃사랑은 무조건 적으로 사랑해야 가능하다.
이것 저것 따지는 순간, 우리는 테이커로 변화되어서, 나의 욕심을 채우기 바빠질 것이다.
그 결과,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되어버릴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기버가 되자. 이웃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봉사를 생각해보자.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 되게 해주세요. 기버가 되서, 다음세대를 키울 수 있는 사람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오늘 당신은 기버였습니까? 다른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였나요?

데살로니가 전서 2장

22.08.16

9절)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진심이라면…
데살로니가 전서 2장에서는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사도바울이 어떻게 사역했는지가 쓰여져 있다.
본문을 읽으면서 사도바울과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과 전우애와 같은 깊은 교감을 하는 것이 느껴졌다.
동병상련하면서, 서로를 의지하고 진심으로 아껴주었다.
사람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충만함으로 서로를 권면하고 조언을 구하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청난 시너지가 폭발하여서, 믿음의 본이 되는 사례로 성경에 기록되었다.
그 중 9절에서 밤낮으로 일하는 말이 와닿았다.
사도 바울은 쉴 시간도 없어서 그 때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1분 1초가 소중한 그 시간을 귀하게 쓰기 위해서 정말 진심으로 성도들과 소통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심하였다.
집안일, 육아와 일만으로도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진심으로 말씀에 붙들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잠잘 시간과 낭비하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말씀을 읽는다.
진심으로 묵상대학에 임하기 때문에, 아침에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성령님의 지헤를 구한다.
진심이기 때문에, 밤낮으로 일하는 것이 즐겁다.
진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묵상과 질문이 기다려진다.
나의 시간을 제일 먼저 주님께 드릴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또, 이 순간을 우리 오벤젼스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기에 오늘도 묵상은 즐겁다.
오늘의 기도
나의 시간을 주관하시는 주님. 하루의 시작을 주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가장 소중한 시간을 주님과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가득 부어주셔서 4년의 기간동안 열정으로 묵상 대학을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밤낮으로 구분없이 열정적으로 했던 일이 있었나요?

데살로니가 전서 1장

22.8.15

8절)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영적 아버지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났는 지에 우리의 삶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배경>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환란과 핍박, 고문과 감옥행
데살리니가 성도에게도 똑같은 고난이 함께함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를 보낼 때는 2차 전도여행이었습니다.
전도여행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지시임을 확신하고 떠난 여행은 핍박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모든 곳에서 말씀의 역사와 핍박이 함께하였습니다.
모진 고문과 고통에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교통의 중심지 (지금의 그리스)였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는 우상 숭배도 만연해있었습니다.
바울의 전도 사역은 많은 사람들을 회심하게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의 믿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고, 우상 숭배하던 많은
주를 믿게 된 그들에게도 바울처럼 핍박과 고난이 들이닥쳤습니다. 주를 믿는 성도들에게도 믿음의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분명한 것은 데살리니가 성도들은 믿음을 부인하거나, 고통에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영적 아버지인 바울의 믿음과 소명을 물려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준 믿음의 배양분을 잘 받아드렸습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의 사역들이 소문이 났습니다.
참 자유를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넓혀갔습니다.
본문에서 데살로니가의 소문을 들은 사도 바울의 심경이 잘 나타남이 느껴집니다. 뿌리 씨앗의 열매들이 잘 자라고,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는 소식에 기쁨과 대견함과 자랑스러움이 느껴집니다.
10절에 영적 자녀를 향한 당부와 조언도 잊지 않습니다. 주님의 재림과 부활신앙을 강조합니다.
지금 우리들에게도 영적 아버지, 멘토가 필요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세상적이고, 부정적인 사람들만 가득 하다면, 더더욱 우리는 나의 신앙을 이끌 영적 리더가 필요합니다.
세상 가치만을 쫓는 무리들을 끊어내고, 영적 아버지가 알려주시는 신앙의 길을 따르기를 소망합니다.
P.S. 우리 묵상 대학이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소문이 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기도
영적 아버지의 말씀과 신앙을 잘 따르는 순종적인 자녀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나에게 영적아버지(멘토)는 누구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