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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 전서, 후서 (22.12.1 ~ 22.12.12)

목차

디모데 후서 4장

22.12.12(월)

7절)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후회하지 않는 삶
금쪽 같은 내 새끼에서 한 에피소드를 보았다.
강압적인 아버지의 자녀들이 억압 받는 에피소드였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어린 시절 떄문에, 아버지에게 남은 상처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너희들은 행복한 거라는 말로,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간섭하고, 통제하려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가정에 행복감 보다는 억압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해를 하는 아이까지 있었다.
본문에는 바울의 유언같은 구절이 나온다. 선한 싸움의 마침표를 찍고, 주의 길을 걸었다는 구절이다.
바울의 삶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떄문에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선한 싸움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내려 놓으신 예수님처럼 살기를 선택했기에 후회가 없는 느낌을 받았다.
자유가 억압되고, 통제 당해서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면 우리는 후회할 것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나의 인생이 결정되었다면, 아버지를 원망하고, 자신의 삶을 후회 했을 것이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뜻을 삶에 성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의 삶은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한다.
자신의 뜻대로만 삶을 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선한 싸움을 해야 한다.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상의 가치로 좋아보이는 것을 쫓아간 삶의 끝은 허무이다. 목마른 영혼의 갈증을 채워 줄 수 없다.
세상의 가치를 쫓아 삶을 산다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그때 주님을 선택할 껄…
후회하지 않는 삶은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매일매일을 주님의 말씀을 읽는 시간에 아낌없이 투자하자.
함께 기도
우리가 쫓아가야할 믿음의 길을 이어 갈 수 있는 힘 주세요. 선한 싸움에 동참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내가 후회하는 1가지는?

디모데 후서 3장

22.12.10(토)

7절)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14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교육
본문에는 2가지 배움이 나온다.
허무한 배움과 유익한 배움이다.
허무한 배움은 무엇일까? 앞선 절에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욕심있는 자의 배움이다. 세상적인 배움이다. 경건의 모양만 있는 배움이다.
즉, 정욕과 욕심에 따른 배움이다.
유익한 배움은 무엇일까? 앞절을 살펴보자.
그리스도를 믿음이 유익하다. 그리스도의 경건함을 본받을려는 믿음이 그러하다.
성경을 배우는 것이 유익하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 유익한 배움이다.
학식이 뛰어나도, 많은 논문을 내더라도, 하나님을 모른다면, 무의미한 것을 위해서 열심을 낸것이다.
이전에는 나의 배움에 대해서 집중했다면, 자녀가 있는 아버지 입장에서 자녀의 교육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교육시장이 유행에 민감하고,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음을 느낀다.
초등생을 맡길 곳이 없어서 학원을 돌리는 현실과 학원에서 학우를 사귀는 초등생의 문화를 무시 못한다.
학업에 대한 열정이 쎈 학군에서는 이미 초등생들이 영어와 한글을 다 떼고 온다는 것이다. 그 중 내 자녀만 한글과 영어를 몰라서 뒤 떨어져서 놀림을 받는 다면? 적응을 못한다면?
심지어 8개월부터는 배우면 좋은 조기교육 시장이 엄청나다. 주변에서 한명씩 하기 시작하면, 내 자녀에게 시키지 않으면, 뒤떨어질 것 같은 걱정이 앞서서 어쩔 수 없이 그 교육을 시키게 된다.
그리고, 코딩 교육과 아이들한테 좋은 교육이라고 하면, 학부모들은 가리지 않는다.
어렸을 때 생각해보면, 바둑학원과 주판학원 한자학원 인성학원 등을 다니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지금은 코딩이다. 강남엄마들이 시키는 교육들이 지방에 내려와서 유행하고,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자녀들에게 고민없이 교육을 시킨다.
대한민국 자녀교육에 회의감이 많이 든다. 그렇게 교육시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끝에는 세상의 정욕과 욕심이 담긴 배움임을 느낀다.
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을 전달하자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믿음 외에는 자녀가 원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
하지만, 나의 맘대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기에 약간 서글프다.
그래도 말보다는 삶의 실천을 통해서 보여주면 될 것임을 믿는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삶으로 예배드리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 될 것임을 믿는다.
앞선 많은 걱정들은 주님께 올려드린다. 주님의 뜻대로 가정을 움직여주기를 기도한다.
함께 기도
유익한 배움을 먼저 가르쳐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디모데 후서 2장

22.12.09(금)

8절)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왕으로 오신 주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를 살피면, 42세대의 조상이 나온다. 이 중 다윗의 자손임이 나오는데, 이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자 메시아라는 당위성을 가진다.
당위성 때문에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이 강조되는 것일까? 우리는 말씀을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태복음의 계보에서는 조상 중 여인들이 나온다. 그 중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다윗의 자손임을 말하고 있다.
위대한 왕의 가장 큰 죄인 정욕의 대목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즉, 예수님의 조상들 조차도 죄에서 자유할 수 없었다. 죄의 문제로 실수를 반복하는 인생을 살아갔다.
인간이기에 죄의 문제에서 자유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죄는 우리의 삶을 갉아 먹는다.
이런 죄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등장하셨다. 예수님이시다. 죄에서 자유함을 주시고,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는 분이다.
가장 더러운 곳에서 가장 깨끗한 분이 나시니, 더 깊은 감동이 몰려온다.
우리가 죄의 문제로 넘어지고, 낙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삶에서 죄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죄를 가벼이 생각한다면, 죄로 인한 고통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본문은 이런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을 위해서 힘써 일하는 것을 강조한다. 삶의 실천적인 부분을 매우 중요시 한다.
내가 어떤 분을 믿고 따르는지 분명해 지면, 나의 정체성이 분명해 진다.
나의 정체성이 분명해 지면, 삶을 허비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예수님임을 기억하자. 그리고 실천을 통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자.
죄와 싸우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주님의 주신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함께 기도
주님은 메시아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입니다. 저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인생을 변화시켜 주세요.
오늘의 질문
싸웠던 경험? 말싸움, 몸싸움, 사랑싸움 무엇이든 OK

디모데 후서 1장

22.12.08(목)

17절)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부지런히 찾는 마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이진다는 말이 있다.”
“마음이 가까워 지면, 몸도 가까워진다”도 참이다.
사람의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그리고 몸이 따라간다.
그래서, 새로 사귄 이성친구가 어떤 사람일지 알고 싶다면, 그 친구가 어디에 얼만큼 시간을 보내는 지, 돈을 어디에 쓰는지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카페에 가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한다면, 허영심이 있는 사람일 수 있다.
게임하고, 혼자 집에 있기 좋아한다면, 너드일 수 있다.
어떤 친구들 하고 시간을 보내는 지 알면, 그 사람의 수준과 인성도 알 수 있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에 갈급한 마음과 믿음의 열정이 있다면, 예수님을 찾을 것이다. 말씀을 찾을 것이다.
만약, 하루에 말씀을 가까이 하는 시간이 없다면, 미안하지만, 마음이 식은 것이다. 권태기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6절의 말씀처럼 은사와 사랑이 불일듯 하기를 소망한다.
본문의 바울에게 위로가 되는 형제를 소개하고 있다. 오네시보로의 뜻은 이득을 취한다는 뜻이다.
그는 감옥에 갇히고, 핍박 받는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도로써 바울을 받아들였다.
그가 받는 고난에 함께 아파하였다.
오네시보로의 마음에는 바울을 향한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이 강원도에 살아서 왕복 5시간을 이동하고 30분만 함께 시간을 보내도 즐거울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하루 기도와 말씀 읽는 시간이 즐겁다.
어떤 말씀을 오늘 주실지 기대심이 가득하다.
부지런히 찾는 마음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부터 시작된다.
마음이 시작되면, 몸이 따라간다.
나의 삶의 패턴이 바뀐다.
이전에는 기도와 말씀 없는 하루를 보냈다면, 기도와 말씀 없이는 하루가 허전하다.
묵상 대학이라는 도구로 항상 부지런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다.
부지런하게 예수님을 찾고자 달려보자! (영차! 영차!)
함께 기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회복되게 해주세요. 부지런히 찾는 마음과 실천하는 믿음 부어주세요.
오늘의 질문
내가 요런 것은 부지런히 잘하다는 것이 있나요?

디모데 전서 6장

22.12.07(수)

18절)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선한 사업
본문 10절에는 돈을 사랑함이 악의 뿌리가 됨을 말한다.
물질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함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문장을 자칫 돈을 멀리하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돈 자체를 악의 뿌리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악의 뿌리인것이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 선한 마음과 돈을 멀리하는 우매한 생각을 벗어나려면, 돈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정확히는 돈이 하나님의 세계에서 사용되는 지를 이해해야 한다.
즉, 우리가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본문 18절에는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돈을 사용해야 하는 곳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는 영역이다.
선한 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반드시 있는 일을 말한다.
우리가 돈을 사용해야 하는 곳은 함께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작은 선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선한 사업은 혼자 운영할 수 없다. 동역자가 필요하다.
동역자는 가까이는 배우자부터 멀리는 믿음 청년들이 될 수 있다.
정리하면,
우리는 돈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한다.
돈을 사랑함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 백승이라는 말처럼 돈을 알아야 선한 사업의 도구로써 활용할 수 있다.
우리는 돈을 잘 벌어야 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물질이 필요하고, 선한 사업을 위해서는 그 액수도 커져야 한다.
우리는 돈을 하나님의 나라에 사용해야 한다.
벤츠와 강남의 집을 사는 것에 비전을 두지 말라! 하나님이 하시는 선한 일과 선교에 투자하라!
하루의 1/3을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으면 한다.
작은 선한 일부터 나아가 선한 사업을 할 수 있기를 꿈꾼다.
함께기도
돈에 대해서 정확히 공부하고, 선을 구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당신이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이유는?

디모데 전서 5장

22.12.06(화)

6절)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신앙 좀비
좀비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이 병원에서 깨어난다. 코마에서 깨어나 보니, 주변이 쑥대밭이 되었다.
저 멀리서 돌아다니는 한 명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간다.
낯선 이가 뒤돌아 보는 순간 얼굴과 몸은 상처 투성이가 된 채로 돌아다닌다. 그리고 주인공을 물어 뜯을려고 한다.
살았으나 죽었다는 구절을 보고 제일 먼저 좀비가 떠올랐다. (좀비영화 좋아함. ㅋㅋㅋ)
좀비는 원인모를 바이러스에 죽음을 당한 사람이 감염되어서, 시체가 된 채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공격하는 가상의 존재이다.
본문은 향락을 좋아하는 자가 이런 좀비라고 말한다.
좀비는 어떤 특성이 있을까?
1.
공격적인 성향을 띔
2.
다른 사람을 감염시킴
3.
무지하여서, 가족들도 공격함
신앙적으로 죽은 사람들의 특징도 좀비와 같다.
1.
트러블 메이커
2.
다른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침 (주변인들도 자기와 같이 되길 원함)
3.
가정을 돌보지 않음.
신앙 좀비들은 처음부터 좀비는 아니었다.
하지만, 향락을 좋아한 나머지 일상에서 신앙을 훈련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노력보다는 향락을 선택했다.
사소한 일상의 선택이 쌓여서, 신앙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좀비로 변하게 된 것이다.
나는 향락에 미친 자이다. 미치도록 눕고 싶고, 미치도록 놀고 싶다.
말씀의 가르침에 따라서 계속해서 정진함을 느낀다. 공부하고, 묵상하고, 가정을 돌보는 일에 힘을 다하는 오늘이 되자!
좀비 때려잡는 마동석같은 신앙을 주세요!
함께 기도
신앙 백신인 묵상을 매일 매일 사모하고, 이어지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내가 생각하는 향락은? (최향락!)

디모데 전서 4장

22.12.05(월)

13절)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읽고, 권하고, 가르쳐라!
우리의 인생은 잠시 잠깐이다. 30살이 넘으면서, 더 그렇게 느껴진다. 시간은 빠르고, 눈 깜짝할 사이에 22년이 지나가 버렸다.
짧은 인생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면 될까? 나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본문을 통해서 꾸준히 성장해서, 사람을 가르치고, 길러내는 것이 중요한 역할임을 분명히 깨닫는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나라가 없어지는 와중에도 하나님의 말씀만은 전해져 왔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뿌리 박혀 있었다.
돈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현재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 믿음의 세대에게 돈을 물려줄 것이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을 물려주어야 한다.
믿음을 전하기 위해서느 우리가 전 세대의 믿음을 잘 배워야 한다. 나의 믿음이 올바르게 서야 한다.
그리고 가르쳐야 한다. 나만 잘 믿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믿음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매일 묵상과 기도하는 연습을 한다. 현실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땀을 흘린다. 십시일반으로 쌓이는 믿음과 기도가 우리의 인생에 큰 변곡점이 되기를 기도한다.
함께 기도
부단히 노력하는 믿음의 사람 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근래에 내가 읽고 있는 것은?

디모데 전서 3장

22.12.03(토)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미천한 자의 하나님
본문에는 집사의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의 도리, 경건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 나오고 있다. 이전에는 직접적으로만 받아들였다.
집사가 되려면 경견한 삶을 살아야지! 라고 말이다.
오늘은 25일 말씀 묵상을 읽으면서,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단정하고, 절제되고, 신중하고, 나그네를 대접하고, 술을 즐기지 않고, 구타하지 않고, 관용하고, 다투지 아니하고,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가정을 잘 다스리고, 공손하고 …
이렇게만 살면 세상이 행복할 것이다. 나의 인생도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경건하게 산다는 일이 여간 힘든 현실 아닌가?
이 중 하나라도, 지키지 못한다면, 그건 깨끗한 양심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정죄하는 감정이 들게 된다.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여인들이 대거 나온다. 그런 여인들은 정상적인 경건한 여인이 아니고, 오히려 최약자들, 창녀, 간음한 자들이 조상으로 나온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성공한 사람, 재능이 많은 사람만을 사용하시지 않는다. 미천한 자라도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면 쓰신다.
나도 미천한 자이다. 하나 잘난 거 없고, 정죄하고, 죄를 지으며 오늘을 반복한다.
이런 나에게도 하나님은 구원의 선물을 주셨다.
본문의 깨끗한 양심은 매일 매일 회개하며, 주님께 나아가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믿음의 비밀은 하나님은 미천한 자를 부르신다는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작은 자 한 사람을 위해서 움직인다.
오늘 비록 죄의 문제로 넘어져도 주님을 믿고 회개하면서, 주님이 주신 길을 나아갈 수 있다는 위로를 받는다.
디모데 전서 3장에서 직분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정죄감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런 나라도 불러주시는 예수님 생각하며, 감사함을 다시 느끼는 말씀임을 깨닫는다.
함께 기도
미천한 나라도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일에 힘쓰는 오늘이 될께요
오늘의 질문
나 혹은 다른사름을 정죄한 적이 있나요?

디모데 전서 2장

22.12.02(금)

10절)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선행 (착하고 어진 행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의 이미지가 있다.
선하고, 정직하고, 착하다는 인상이 든다.
이와는 반대로, 교회다니는 사람이 더하다고 욕하고 다닌 사람도 더러 있다.
무슨 차이일까?
주변에서 교회를 다녔던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했느냐에 따라서 경험한 바가 달랐을 것이다.
본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마땅한 도리는 선행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땅한 도리를 다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먹칠하는 셈이다.
나는 어떨까? 과연 오직 선행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선행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해본다.
먼저, 선행은 속한 곳에 따라서 다르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의 선행은 착한 웃음이 아니다. 일을 잘하는 것이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소통과 협업이 중요하다. 같이 일하는 동료와 대화하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한없는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양말 뒤집어져 있거나, 빨래가 널부러져 있어도, 잔소리보다는 내가 먼저 치우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믿지않는 사람의 무리 안에서는 정직함이 선행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이 선행이라고 생각한다.
공통적으로, 남자는 분노를 다스리고, 참된 리더로 성장하는 것이 선행이라고 본문에서는 말한다.
여자에게는 입으로 죄를 짖는 것을 지양하고, 순종함과 배우는 자세가 선행이라고 말한다.
이 중 나의 삶의 영역에서 선행을 잘 하고 있나? 돌이켜 본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오직! (다른 선택권은 불필요함) 선행(善行)을 선행(先行)하기를 기도한다.
함께 기도
선행을 선행 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오늘한 선행은? (나 이렇게 행동한거 셀프칭찬!)

디모데 전서 1장

22.12.01(목)

13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기준
점심 메뉴를 고르라고 하면, 아무거나 라고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아무거나 상관없는 것은 기준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된다.
계란 알러지가 있으면, 계란 들어간 음식이 제외 해야된다.
갑각류 알러지가 있으면, 갑각류를 제외한 음식이 메뉴로 말할 것이다.
다이어트 중이라면, 칼로리가 낮은 채소 위주의 음식을 먹을 것이다.
이런 기준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고른 메뉴로 음식을 먹을 것이다.
자신의 기준과 의견이 아닌 다른사람이 정해준 음식을 말이다.
본문의 바울은 사울 시절, 율법의 기준으로 삶을 살아갔다.
율법으로 살아가는 자신이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 믿고, 자신의 기준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는다.
율법에만 몰두하여서, 중요한 본질을 바라보지 못했다.
잘못된 기준을 예수님의 기준으로 고침을 받았을 때, 비로소 바울은 지난 과거의 과오를 깨달았다.
후회하고, 회개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기준으로 삶을 살아내고자 노력했다.
오늘도 많은 선택을 했다. 직장에 나가는 선택, 잠을 일찍 자는 선택, 밥을 적게 먹는 선택, 군것질을 하는 선택 등등…
이 중 가장 가치있는 선택은 묵상을 하는 선택이었다. 웹툰을 볼 수도 있고, 인스타그램을 할 수도 있었지만, 말씀을 읽고, 묵상하였다. 비록 환경은 열악했지만, 말씀으로 새롭게 됨이 느껴졌다.
돈도 안주는 데 일을 이렇게 시키네? 라는 생각이 차오를 때마다 주님이 주신 일에 집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을 택했다.
귀가 후 지친 몸으로 유투브를 감상하는 선택이 아닌 가장 소중한 하나를 재우고, 먹이는 일을 선택했다.
가장 소중한 것에 소중한 시간을 쓰겠다는 기준을 잘 적용했다.
22년 마지막 한달이 남은 시점이다. 묵상은 8개월 차이다.
어느 정도 묵상에 익숙해 지니 과제를 하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디모데 전서를 묵상하면서, 새롭게 되는 느낌을 받았고,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기쁨이 무엇인지 다시금 느껴본다.
예수님의 기준이 삶의 기준이 되기를 노력하며,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이 나기를 소망한다.
함께 기도
주님의 기준이 나의 기준이 되게 해주세요.
오늘의 질문
오늘 묵상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