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

스바냐 2장 (23.06.16)

23.06.16 (금)

2절) 정해진 때가 이르기 전에, 기회가 겨처럼 날아가 버리기 전에, 여호와의 무서운 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에, 여호와의 진노의 날이 너희에게 닥치기 전에, 너희는 다 함께 모여라
[ 더 늦기 전에… ]
본문에는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기 전, 회개의 기도를 보여준다.
벌을 받지 않으려면 이렇게 해야된다는 호소이다.
반대로,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모이지를 않으니 2절과 같은 구절이 있었을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극도의 개인주의 사회로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만의 사회 현상이 아니라 글로벌 적인 현상이다.
MZ의 최고의 가치도 공동체 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우선시 하고 있다.
나도 그 중에 한명이다.
최근 친구가 들려준 일화가 있다.
새로 배정된 일터에서 오자마자 다른 직장상사의 첫 마디가 “총무왔네” 였다고 한다.
이에 친구는 막내가 모든 귀찮은 일들을 해야함을 직감하고, 확고한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다.
그래서, MZ 다 그래? 싸가지 없는 막내, 또라이로 찍혔다고 한다.
인생에 도움 안되는 사회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부조리한 일들을 거절하고 미움 받기를 선택했다.
이런 사회 생활이 나에게는 교회생활로 다가왔다.
장년부로 진급하고 2년동안 느낀 것이 사회생활과 다르지 않았다. 억지로 웃고,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만남들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예를 들어서, 유부남끼리 1박 캠핑을 가자고 하는데, 가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억지로 웃고, 시간낭비일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먼저 나에게 있다.
겸손하지 않고, 공동체에 소망을 두지 않았다.
겸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생각의 함정에 빠져있었다.
공동체에 소망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낭비라 느껴졌다.
그다음으로는 놀고 먹는 일에만 집중하는 공동체에 있다.
말씀을 사모하기 보다는 세상과 다를 것 없는 모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말씀의 은혜가 아닌, 단체의 피로함만이 남았다.
이에 제주도 여행 때 정목사님이 솔루션을 제시해 주셨다.
그런 무리들을 바라보기 보다는 혼자라도 좋으니 공동체에서 말씀을 사모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해주셨다.
예를 들어서, 기도회를 위해서 혼자 반주와 기도를 같은 시간에 꾸준히 나와서 한다면, 갈급한 영혼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불평불만보다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야함을 깨달았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벌을 내리기 직전에 회개하기 좋은 적기이다.
더 늦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사역을 실천하자
감사
벌 하시기를 더디 하시고, 예수님 믿고 구원 받을 수 있는 회개의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액션
교회 카페 키오스크 업데이트하기!